이정희도 ‘끝장토론’나서
박근혜 주병진콘서트 출연설
안철수 ‘무릎팍’ 효험 확인
너도나도 TV속으로…
정치 희화화 우려 목소리도
‘TV는 정치를 싣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처리 후 정치권은 본격적인 총ㆍ대선 모드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특히 전 국민의 폭넓은 지지가 필요한 차기 대권 주자라면 이제 TV를 통한 소통법도 단련해야 할 시기다. 이왕이면 딱딱한 토론 프로그램보다 말랑말랑한 포맷 속에 인간적인 매력과 국가지도자로서 탄탄한 역량을 동시에 어필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명박 대통령이 1990년대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후광 효과를 얻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기타를 튕기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민심을 사로잡은 것도 TV 덕을 톡톡히 본 사례다.
‘무릎팍도사’와‘ TV특강’을 통해 단숨에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안철수(위) 원장의 바람(安風)이 여ㆍ야 주요 정치인들의 TV출연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문수(아래) 경기도지사는 지난 17일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구구절절한 가족사를 쏟아냈고, 박원순(오른쪽 아래) 서울시장도‘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한 바 있다. |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유력 대선 주자를 비롯한 정치인들도 대중과 소통을 강화하는 ‘스킨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평소 TV 출연에 적극적이지 않던 정치인들도 점차 브라운관 노출을 늘리며 ‘폴리테인먼트(Poli-entertainment)’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안철수 원장이 ‘무릎팍도사’나 ‘TV 특강’ 등 잦은 TV 노출을 통해 2030 젊은이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표적인 ‘친(親)TV’ 정치인이다. 2008년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 깜짝 출연해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고,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 지사는 지난 17일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경기도 수원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날 김 지사는 딱딱한 정책이나 현 정치에 대한 견해를 걷어내고, 그가 살아온 인생사와 딸과 아내 등 가족사로 버무려진 감성적인 토크를 쏟아냈다.
최소한의 노출만 해온 박 전 대표도 대중적인 ‘어필’이 가능한 ‘TV 소통’을 늘릴 계획이다. 다음달 초 MBC에서 첫 방송되는 ‘주병진의 토크콘서트’에 박 전 대표가 출연한다는 설(說)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제작사인 (주)코엔미디어 측이 “러브콜을 보낸 것은 맞다”고 밝힌 가운데,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현재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하지만 일반인들이 원한다면 (TV 출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넓힐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 전 대표는 과거(2005년) MBC ‘일밤’에 출연해 평소 취미인 요가와 요리하는 것을 비롯해 손수 피아노를 치면서 조카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모습을 방송에서 공개한 바 있다. “2005년과 마찬가지로 대중이 TV 출연을 원한다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게 박 전 대표 측의 입장이다. ‘토크쇼’ ‘콘서트’ 등 말랑말랑한 형태의 소통을 통해 박 전 대표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TV 출연을 통해 ‘울보 투사’ ‘국회 아이돌’ ‘압박 정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이 밖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과의 소통 의지를 피력했다.
정치인들의 ‘TV 앞으로’는 안철수 원장이 지난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게 ‘안철수 신드롬’의 기반이 됐다는 판단에서 기인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 (무릎팍도사) 방송 출연은 ‘건강한 자본주의’와 ‘착한 기업’ 등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며 “ ‘선구적 사업가’ 안철수에서 ‘유력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근 신비주의 전략으로 ‘소통 부재’라는 비판을 받는 안 원장은 사실 TV 출연은 매우 잦은 편이었다. ‘무릎팍도사’를 비롯해 ‘MBC 스페셜’, EBS ‘CEO 특강’,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등 각종 인터뷰, 강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의 철학을 널리 전파하곤 했다. 방송에서 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피력한 안 원장은 인터뷰나 말랑말랑한 다큐멘터리 포맷 속에서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버무려진 멘토링을 자청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정치인들의 TV 출연도 대중과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며 “예전에 ‘체험 삶의 현장’ 같은 프로그램에 정치인이 대거 출연했듯, 대중과 소통하려는 정치인의 행보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인들의 TV 출연 당위성 여부 논란은 시대 흐름에 따라 사그라졌지만, 정치권에서는 ‘노출 효과’를 두고 고심 중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철학과 메시지가 기반이 된 TV 출연은 (안철수처럼) 신드롬이 되지만 단순한 가십성, 홍보를 위한 출연은 오히려 이미지를 깎아먹어 정치의 희화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신중한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