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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숫 자
“나 병에 걸렸어. 척추암이래.”

“죽는대? 살 수 있대?”

“병원에서 살 수 있는 확률은 50%라고 했어.”

“그럼 됐네! 카지노에서 50대 50은 대박이야!”

이 영화의 제목은 ‘50/50’(50대 50)이다. 극중 척추암에 걸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주인공 아담(조지프 고든 래빗)과 그의 철없는 친구 카일(세스 로건)이 나누는 대화다. 성실한 라디오PD, 애틋한 여자친구가 있는 27살의 착한 남자,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잔소리가 심한 어머니를 둔 아들, 아담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말이 있지만 지금 그의 인생은 딱 하나의 숫자로 요약된다. ‘50’. 영화는 (+)방향의 50에서 (-)로 향해가는 아담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여자친구는 바람나고, 베스트 프렌드는 친구의 병을 이용해 여자나 꾀고, 어머니의 아들 집착은 심해지면서 아담의 인생은 점점 죽음의 50쪽으로 기운다. 그래도 아담은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인생을 긍정하면서 자꾸 반대편으로 도망가려는 삶의 고삐를 잡아당긴다.

만약 아담이 2011년 한국에 살았다면 더 많은 숫자를 동원해 그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중요한 사회니 20대라는 팩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반한나라당’ 정서를 갖고 안철수를 선호하는 청년일 가능성이 높게 추정될 것이다. 연봉과 그가 살고 있는 집 평수, 치매인 아버지가 죽게 될 경우 받게 될 유산은 결혼정보회사나 혹은 그를 잠재적 결혼상대자로 꼽고 있는 여자에게 무척 중요한 숫자가 될 것이다. 이왕 척추암에 걸렸으니 호프만식으로 계산된 그의 잔여 인생의 ‘값’, 혹은 그가 가입한 보험의 최고 보상액은 감정사의 관심사항이 될 터다.

이처럼 숫자는 많은 말을 한다. 한국에서 이제 ‘2040’은 정치적 의미를 띤 숫자가 됐고, ‘88만원’은 20대가 처한 서글픈 현실의 상징이 됐다. 굳이 주민등록증과 연봉, 집 평수를 ‘까지’ 않아도 모바일 기기에 붙은 숫자는 당신의 ‘디지털 라이프’를 보여주고, 차종에 붙은 숫자는 신분과 ‘계급’을 드러낸다. 숫자와의 싸움이 가장 절박한 이들은 취업준비생들이다. 심지어 학점과 토익 점수를 곱해 ‘3600’이 나와야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영화도 숫자를 즐겨 제목으로 사용해왔다. 위키피디아에서 ‘숫자가 제목에 들어간 영화목록’(List of Films:numbers)을 검색해보면 무려 120여편이 뜬다. 숫자로는 0( ‘제로 이펙트’)과 0.45( ‘ .45’)에서 수백만(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밀리언스’)까지 걸쳐져 있다. ‘8과 1/2’ ‘9/11’ ‘300’ ‘2012’ 등 고전 명작이거나 그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작품도 많다. 영혼의 무게를 뜻한다는 ‘21그램’도 좋은 작품이었다. 일본 영화로는 성적, 시대적 의미를 중첩시킨 ‘69’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69’는 인터넷에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검색 가능한 숫자다, 아마도 유일한). 한국영화로는 ‘1818’ ‘2424’ 등이 있었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그렇다면 당신 인생의 타이틀로 내걸 수 있을 만한 숫자는 뭐가 있을까. 혹시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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