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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리’,세종과 밀본의 논리 대결 볼만하다
SBS 수목극 ‘뿌리 깊은 나무’는 조선 초기 집현전 연쇄 살인사건에서 한글 반포까지의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는 사극이지만 현대극보다 더 현대적인 느낌이 난다.

캐릭터 간의 대결을 통해 선과 덕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극의 구도는 완전 최신식이다. 가장 강력하게 대결하는 구도는 세종의 민본정치와 삼봉 정도전에서 시작된 밀본의 재상정치의 대립이다. 이 대결은 누가 더 합리적인지, 또는 누가 더 모순적인지, 누가 더 사물과 인간의 이치를 깊게 탐구하고 있는지를 조금씩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래서 보다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 이치를 찾아나간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세종의 한글 창제에는 단순히 한글의 과학적 제자 원리(발음기관인 혀, 목구멍, 이의 모양을 따 글자를 성형)만 내포된 게 아니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만들었다는 교과서적 모습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세종은 이렇게 말한다.

“한자는 수백만명이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글이다. 반면 한글은 우리 몇 명이 단 며칠 만에 만들어 절차상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큰 보편성은 자연의 이치를 담으려 한다. 소리의 이치 원리가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글자들이 혀, 목구멍, 이를 닮아 백성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뱃사람이 미신을 믿는 것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이다. 나도 만났느니라. 백성, 거대한 백성. 내가 이렇게 만들면 백성들이 써줄 것이란 걸 믿고 싶었다.”

이도는 이런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 구체적 실현 대상으로 소이(신세경 분)를 설정하고 있다. 자신 때문에 아비를 잃었고 말을 잃었던 소이에게 말을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작업, 이것이 민본이자, 합리성이요, 권력의 정당성이다. 요즘 권력의 리더십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세종에게 대립하는 밀본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밀본의 시작은 정도전이다. 조선의 뿌리는 재상이며, 왕은 꽃이다. 뿌리가 썩으면 꽃은 필 수 없다.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라, 선비의 나라다. 그런데 집현전은 오로지 왕의 논리를 따르는 신관만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니 집현전 철폐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도전이 왕의 권한을 제한한 이유는 백성을 위해서다.



‘뿌리 깊은 나무’는 여러 갈래의 인물과 조직 간의 대결과 대립, 특히 세종과 밀본의 논리 대결을 통해 어떤 게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지를 생각해보는 게 관전 포인트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어 뻔한 길을 가더라도 이런 논리와 실력 대결 과정을 지켜보는 게 꽤 흥미롭다.

세종을 연기하는 한석규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대사 전달과 매력적인 목소리를 십분 활용해 캐릭터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다.

세종은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이 다르다. 하지만 송중기가 연기했던 어린 시절을 한석규는 성인 이도로 잘 연결시키고 있다. 세종은 현실정치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을 접하며 욕도 하고 소품도 집어던지는 등 감정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부드러움과 열정을 아울러 지닌 세종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똘복 강채윤(장혁 분)의 아버지는 태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죽인 세종의 장인어른 심온 대감집에서 노비로 일하다 억울하게 죽었다. 이도에게 검을 겨누는 똘복은 이도에게 큰 짐이다.

세종은 어린 시절 태종에 대항한 정기준을 살리려 했지만, 정기준은 밀본이 돼 세종이 만든 집현전 학사들을 한 명씩 죽이고 있다. 세제 개혁을 위해 새롭게 전답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얘기에 재상들을 일제히 들고 일어난다. 세종은 “이런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세종이 인간적인 군주로 보이는 이유다. 이렇게 말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완벽한 연기다.

서병기 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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