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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상상력사전> 천상과 지상 사이…옥상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영화속 다용도실…‘돼지의 왕’에선 비열한 권력다툼의 場·‘티끌모아 로맨스’에선 사랑이 싹트는 곳으로
당신의 ‘옥상’은 어디입니까.

한뼘 제겨 디딜 땅을 못 찾고 밀려 밀려 올라가 둥지를 튼 곳. 직장 상사의 호된 질책을 받고 자판기 커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곳. 사내연애 중인 영업부 김 대리와 총무부 여사원이 밀회를 즐기는 곳, 욱한 사내놈들이 방과후에 서열 짓기 담판을 벌이는 곳. 도시의 마천루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곳. 그것도 아니라면 도시 속 ‘천상의 삶’이 허락되는 환상의 공간. 어딜까.

‘옥상’이다. 완득이도, 그 녀석의 담임선생인 ‘똥주’도 옥상에 산다( ‘완득이’). 돈이 없어 연애를 못하는 백수청년 송중기도, 돈이 아까워 사랑을 안하는 짠순이 한예슬도 그곳에 산다( ‘티끌모아 로맨스’). 비탈길을 올라 다닥다닥 힘겹게 자리잡은 삶들의 꼭대기집은 옥탑방이라고 불리지만 도심 속 초고층 초호화 아파트의 그곳은 ‘펜트하우스’라는 근사한 이름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타워 하이스트’에서 부패한 월스트리트의 거물은 뉴욕 한복판 최고급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에 살며 옥상에 개인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옥탑방’이 현실이라면 ‘펜트하우스’는 욕망의 바벨탑이다.

말죽거리의 소년들( ‘말죽거리잔혹사’)로부터 코밑 수염 거뭇거뭇한 남학생들은 방과후엔 늘 옥상으로 향했다( ‘방과후 옥상’). 그들에겐 담배를 피우며 ‘담탱이’를 욕하고 도색잡지를 돌려보는 일탈의 공간이자 주먹싸움이 벌어지는 링이고, 어떤 소년들에겐 두려움의 장소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옥상에서 권력의 서열을 정한다. 아이들의 잔혹한 권력게임을 다룬 국산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에서도 주인공들은 옥상에서 싸우고, 옥상에서 권력을 얻는다. 

애니메이션‘ 돼지들의 왕’<위부터>, 영화‘완득이’, 영화‘ 여고괴담 5’

소녀들도 옥상으로 간다. 이유는 다르다. 아슬아슬한 난간에 발끝을 올려놓으며 길지 않았던 생과 사의 무게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대개의 경우 성적, 이성, 학대, 폭력 등 어린 나이에 짊어지기 어려운 짐은 허공을 향해 추를 기울게 한다. ‘여고괴담’ 이후 숱한 학원 공포물이 소녀들의 추락사를 담았다.

청춘남녀들에게도 옥상은 쓰임새가 다양하다.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공간이다. ‘너는 펫’에서 능력 있는 패션에디터로 등장하는 김하늘은 같은 건물로 들게 된 첫사랑 상대를 만나 옥상으로 간다. 여기에는 동서가 따로없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프렌즈 위드 베네핏’에서 여주인공(밀라 쿠니스)이 삶에 지쳤을 때, 남자에게 채였을 때 찾곤 했던 옥상이 결국은 사랑을 이루는 공간이 된다.

영화 속에서 옥상만큼 세상의 모든 삶들을 보여주고 세상의 모든 관계가 교차하고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분출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실제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일주일에, 1년에 몇 번이나 옥상을 찾을까마는 영화에서만큼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극적인 공간이 된다. 옥상이야말로 영화의 다용도실이다. 그렇다면 당신 마음 속의 ‘옥상’은 어디일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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