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장은 연합통신과 인터뷰에서 “내가 번 돈을 다 내놓고 가겠다”며 모든 재산을 한국과 일본 양국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한 회장은 자신의 재산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2009년 일본 부호 순위에서 재산액 1천320억엔(현재 환율로 1조9천100억원)으로 22위에 오른 거부다.
한 회장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뭔가 하나 남기고 갈 것이며, 요즘은 눈만 뜨면 그것을 연구하고 구상한다”면서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내 재산은 한일 양국의 우호 발전과 각종 사회봉사에 쓰일 것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회장은 특히 “나도 돈을 버는 기술보다는 돈을 쓰는 예술에 집중해 여생을 살려고 한다”면서 “돈을 모두 내놓고 홀딱 벗고 가겠다”고도 했다.
한 회장은 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남의 이름을 따 1990년 도쿄에 설립한 한철문화재단의 기금 규모를 조만간 1400억원으로 확대해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와 우호 친선, 사회봉사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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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지난해 경남 사천시에 50억원을 들여 장학 목적으로 설립한 한창우·나카코 교육문화재단에도 50억원을 추가 출연하겠다고 덧붙였다.
1931년 사천에서 태어난 한 회장은 16세 때인 1947년 일본으로 밀항해 온갖 역경을 딛고 호서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57년 마루한을 설립,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일본 최대의 빠찡꼬 업체로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며 그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다.
몇 번이나 결핵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호세이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전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그는 일본에 먼저 간 친척의 도움으로 미네야마의한 빠찡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 빠찡꼬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됐다.
자신이 일하던 빠찡꼬장이 과당경쟁으로 부도 위기를 맞자 이를 인수한 그는 밤을 새워가며 빠찡꼬 공부에 매달렸다. 영업이 잘 돼 효고현 도요오카와 교토 마이쓰루 등으로 업장을 확대하고 전국 6곳에 볼링장도 열었다. 그러나 볼링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60억엔의 빚더미를 안게 됐다.
자살의 유혹을 떨쳐내고 본업인 빠찡꼬로 돌아와 10여년간 고생을 한 끝에 활로를 찾았으나 1976년 장남 이 미국 여행 도중 강에 빠져 사망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80년 등장한 신형 빠찡꼬 기계 ‘피버’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 회장의 마루한은 점포수 258개, 기계 대수 15만여대의 일본 빠찡꼬업계 부동의 1위로 올라섰다.
푸드서비스업, 청소용역업, 광고업, 건축업, 보험업, 은행업에 차례로 진출한 마루한은 연간 30조원의 매출을 내는 일본 30대 그룹의 반열에 올라섰다.
한 회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곤주호상, 수이호상(제3등 훈장)을 수상했고, 한국 정부로부터 한일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받았다.
김윤희 기자 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