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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팝은 세계적 수준, ‘19금 가요’는 구시대...
MBC ‘나는 가수다’가 전 국민적 관심과 함께 방송가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은, 노래 좀 한다는 가수들에 대한 평가보다는 대중들에게 잊혀진 과거의 히트곡과 숨은 명곡, 실력있는 가수를 다시 찾아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불려진 노래가 심의 기관에서 뒤늦게 청소년유해물 판정을 받고 일명 ‘19금 가요’ 딱지가 붙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자우림이 리메이크해 불러 이 프로에서 1위에 오른 1980년대 가요 ‘고래사냥’은 한때 금지곡이었다가 해금된 지 20여년 만에, 90년대 히트곡인 ‘취중진담’은 10여년 만에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됐다. 

발매 6년 만에 ‘19금 리스트’에 오른 장혜진이 부른 ‘술이야’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웃지 못할 일은 편곡 작업을 통해 곡 분위기만 바뀌고 노랫말은 대부분 그대로인 리메이크곡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일부 곡도 있다는 것.대중가요 심의제도의 현 수준과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랫말에 술, 담배란 단어만 들어가면 규제를 한다’는 게 가요계의 인식이다. 실제로 문제가 된 노랫말에는 노래의 흐름이나 맥락과는 관계없이 청소년유해매체로 선정돼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여성부가 발표한 ‘유해약물’ 사유로 청소년유해물로 지정한 2PM의 ‘Hands Up’, 장기하와 얼굴들의 ‘나를 받아주오’, 10㎝의 ‘아메리카노’, ’김현중의 ‘제발’, 백지영의 ‘아이캔 드링크’ 등서도 술, 담배가 문제가 됐다.

해당 심의기관은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해 발표하거나 통보하면 그만이지만, 가수, 음반 제작자들은 일단 ‘19금 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새로운 판정에 따른 대가와 비용을 치러야 한다. 한 음반제작자는 “몇 년 전에 내놓은 앨범을 찾아내 연령제한 스티커를 일일이 붙이는 것은 우리 몫이다. 차라리 구악(舊惡)이라 불렸던 사전심의가 낫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라고 하소연했다.

가요심의제도에 대한 가수, 제작자들의 반발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올 초 SM엔터테인먼트가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낸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통보 및 고시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사실상 원고 승소 결정 이후, 규제에 대해 순응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대중음악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적잖은 가수들이 현 심의제도를 공식적으로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음반기획사들은 적극적으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거나 고려하고 있다.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가수인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자 지난 8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음악을 작품과 맥락으로서 보는 시각, 대중과 듣는 수준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현 심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부는 다양한 미디어 토론을 통해 논란의 핵심인 청소년유해매체 기준과 관련해 해명하다 되레 곤경에 빠지더니, 급기야 대중음악 심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또 현 심의위원회를 보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민간자율심의위원 자격으로 KMP홀딩스(대표 김창환)를 참여시키기로 했다. KMP홀딩스는 국내 대표적인 연예기획사 미디어라인을 비롯한 SM, YG, JYP, 스타제국, 캔엔터테인먼트, 뮤직팩토리 등 7개사의 합작법인이지만, 심의위원의 일원으로 심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부가 공정성을 확보하긴 사실상 어렵다. 

여성부가 비판적인 여론을 달래기 위해 미봉책을 내놓은 가운데, 지난 5일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 음반 제작 관련 3개 단체는 연내 민간자율 음반심의기구를 발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RIAA가 자율심의로 성, 폭력,약물, 알코올, 자살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부모의 조언-노골적인 가사’라는 문구가 적인 레이블을 붙인다. 또 해당 음반은 대형마트 등 대부분의 주요음반유통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일본은 일본레코드협회 내의 레코드윤리심사회가 심사한다.

이덕요 한국음원제작자 협회 회장은 “K팝은 온라인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 세계 시장에서 앞서나가고 있는데 현행 대중음악 규제를 비롯한 저작권 등 법,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이라면서 “민간자율 음반심의기구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내 구체적인 운영 계획을 발표할 예정인 3단체가 운영할 민간자율기구는 청소년 보호업무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와 음악산업진흥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를 통해 현실적인 심의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혀, 구시대적 잣대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 ‘19금 가요’의 출구가 될지 주목된다.

이경희 선임기자/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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