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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MBS에서 만나는 달리,그 기이한 천재의 세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진 시계가 탁자를 타고 흘러내리는 살바도르 달리(1904~89)의 유화 ’기억의 고집(The Persistence of Memory)’은 달리의 대표작이다. 꿈이라는 무의식 속에 내재된 인간의 욕망을 흘러내리는 시계를 통해 표현한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 미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이다.

전세계 미술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기억의 고집’(뉴욕 MoMA 컬렉션) 중 가장 핵심에 해당되는 ’늘어진 시계’ 부분은 대형 조각으로도 제작됐다. 이 뿐아니라 달리의 회화는 다수가 입체 버전으로 제작돼 천재의 기괴한 환각의 세계를 우리 앞에 드라마틱하게 드리운다. 

저 매끈한 미로의 비너스에서 각진 서랍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사람의 몸에도 서랍이 주르르 달려 있고, 두덩이로 잘린 여성신체의 절단면에선 황금빛 작은 알이 ‘봉긋’ 솟아나는 식이다.


이같은 달리의 조각과 회화, 드로잉, 가구, 보석이 아시아에 왔다.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서 20분 거리의 베이프론트에 위치한 복합리조트 ‘마리나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의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은 ‘달리-천재의 내면’전을 열고 있다. 오는 11월13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에는 초현실주의의 거장 달리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250점이 나왔다. 전시는 달리 기념사업회인 ‘달리 유니버스’(Dalí Univers)와 스트라톤 재단(The Stratton Foundation)의 주관 하에 스위스 멘드리지오 등 전세계를 순회하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에 오게 된 것.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달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공명해 의식 속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표현했다. 스스로 ‘편집광적·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수법은 기이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세상을 가득 메운 인간들의 정상적인 그 무엇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고 토로했던 그의 현실부적응 장애는 예술가로선 오히려 축복이었다. 그 광기와 편집증 때문에 미술사에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짓궂고 유쾌하며 우주적 팽창까지 느끼게 하는 낯선 예술이 나왔으니 말이다. 특히 달리는 ‘20세기의 지적 혁명’으로 불리는 초현실주의의 흐름을 주도했던 작가로, 관습과 논리에 갇힌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시킨바 있다.


“나는 태아 때부터 천재임을 인식했다"며 스스로를 뻔뻔스러울 정도로 ‘최고의 천재’라 칭하던 이 광인은 놀라운 독창성과 지성, 기괴하고 파격적인 예술세계로 마침내 ‘영혼이 그림 그 자체’가 되는 경지에 올랐다. 게다가 영화, 퍼포먼스, 강연,보석 디자인, 저술, 뉴욕의 백화점 매장작업 등 여러 장르에서 무한한 재능을 떨쳤다. 달리는 또한 살아 생전 엄청난 부와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니 지독한 가난과 절망에 시달렸던 반 고흐의 정반대 꼭지점에 선 작가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천재 달리의 진면목을 다각도로 음미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모두 9개로 이뤄진 뮤지엄의 전시공간에는 일련의 드로잉들이 높낮이가 다르게 입체적으로 내걸려 흥미를 돋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조각들. “초현실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외치듯 대형 조각들은 달리의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끝없이 보여준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작가이지만, 후반기에는 그것마저도 뛰어넘어 버렸다. 초현실을 넘어 현실로 되돌아온 것. 이번 전시에는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든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한편 57층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 대규모 옥외수영장과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를 얹어놓아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마리나베이 샌즈는 컨벤션센터, 명품쇼핑가, 카지노, 뮤지컬극장(현재 ‘라이온 킹’ 공연 중) 외에 올들어 4개층의 전시장을 갖춘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을 개관해 예술공간을 보강했다.

커다란 연꽃 모양의 이 뮤지엄 지하 갤러리에선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영상쇼가 인기리에 열리고 있다. 반 고흐의 작품을 촬영한 영상을 초대형 공간에서 특수기법으로 투사하는 ‘반 고흐 Alive’가 그 것. 관람객들은 아름답고 처연한 음악이 흐르는 어두운 실내에서 반 고흐의 친숙한 그림들을 영상으로 감상하며 고독했던 화가의 예술혼과 만나고 잇다.


한편 오는 10월 29일부터는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의 침몰(1912년) 1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타이타닉(Titanic)’전이 열린다. 내년 4월까지 이어질 타이타닉 전에는 화려했던 선실 내부와 선박 유물 등 275점이 공개된다. 톰 잴러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관장은 “달리 전에 이어 타이타닉 전시는 단순히 보는 차원을 넘어, 감동을 느끼는 체험형 전시로 꾸며 마리나베이 샌즈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마리나베이 샌즈에는 명품브래드 루이비통이 독립된 하나의 섬(island)처럼 꾸며진 복합매장을 새롭게 오픈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이 매장은 전세계 루이비통 매장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루이비통은 이 매장의 오픈 기념으로 미술전인 ‘아일랜드’전도 개막했다. 중국 일본 등지의 아티스트가 다수 참여한 이 전시에는 ‘붉은 산수’로 유럽과 홍콩에서 국제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국작가 이세현의 회화도 포함돼 한국현대미술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휴양, 비즈니스, 쇼핑이 어우러진 신 개념의 복합리조트에선 이렇듯 문화예술이 다채로운 결을 이루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싱가포르=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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