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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목요? 말도 마시오…간혹 찾아오는 손님은 있지만…”
“추석 대목요? 말도 마시오. 물건 사는 손님은 없고 종일 가격만 물어봐요.”

유통가에서 1년 중 최고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을 앞둔 서울 영등포전통시장. 이 시장에서 대일상회를 운영하는 이모(60ㆍ여) 씨는 골목을 기웃거리던 손님이 끝내 그냥 지나치자 한숨을 내쉬었다. 행여나 손님이 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다 한숨 쉬며 자리로 돌아오는 상인은 이 씨만이 아니었다.

옆 가게도, 그 건너편 가게도 “며칠째 손님 구경 못했다”며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리 추석을 준비하는 알뜰족으로 한창 붐벼야 할 영등포전통시장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손님이 없고 한산했다. 상점과 골목길 등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추석 대목의 온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석 명절을 1주일 앞둔 5일 서울 영등포 전통시장에는 연중 최대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제수용품을 비롯한 추석용품을 구입하려는 손님이 많지 않아 썰렁한 모습이다. [헤럴드DB]

추석은 품목에 따라 1년 장사의 절반이라고 말할 만큼 유통가에서 연중 가장 큰 대목으로 꼽힌다. 그러나 전통시장을 지키는 상인들은 “추석 특수는 옛날 일”이라고 푸념을 쏟아냈다. 신광정육점을 운영하는 임모(47) 씨는 “추석이라고 해도 간신히 밥만 먹고사는 수준”이라며 “매년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임 씨의 가게 뒤쪽에서 수산물 소매점을 운영하는 임숙자(50ㆍ여) 씨는 “예년 같으면 추석 1주일 전에는 12마리씩 든 조기가 하루에 두세 상자씩 팔려 나가는데, 요즘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 정도만 팔리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임 씨는 또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도 비싸진 생선값에 크게 놀라며 그냥 돌아가거나 값싼 다른 생선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번 추석은 예년에 비해 열흘 정도 일찍 찾아와 제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추석 분위기도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시장은 더 맥을 못 추고 있다. 명절 차례상에 오르는 나물류를 팔던 양모(29ㆍ여) 씨는 “보통 추석 1주일 전부터 사람들이 시장을 찾는데, 올해는 추석이 일러서인지 한산하다”고 전했다.

견과류를 파는 정진수(63) 씨 역시 “올해 추석이 일러서 햇밤과 햇대추가 나오는 시기가 빠듯하다”며 “아직 새파란 대추밖에 없으니 손님이 와도 차례상에 올릴 대추를 내보일 수 있겠냐”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특히 이른 추석 때문에 제 빛을 못 본 품목으로 꼽히는 과일은 상인들에게 애물단지다. 영등포청과물시장에서 ‘내고향청과’라는 과일가게를 지키던 윤석호(40) 씨는 “추석이 예년보다 2주 정도 빨리 찾아오는 바람에 과일이 제대로 익지 않아 물량이 조금 적게 들어온다”며 “먹음직한 과일이 시중에 많이 풀리지도 않고, 과일값 비싸다는 얘기가 많이 돌아서인지 선물용은 고사하고 제수용 과일도 안 나간다”고 푸념했다.

시장에 가득 찬 건 상인들의 한숨뿐만이 아니었다. 알뜰한 추석 장보기를 위해 발품을 파는 주부들도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물가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배 한 개에 1만원을 웃도는 고물가 시대에서 제수용품은 고사하고 평소 먹을 찬거리 장만도 부담스럽다는 게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한산한 시장 골목을 돌며 추석 준비를 하던 주부 김성례(56ㆍ여) 씨는 “채소나 과일이 엄청 비싸진 것 같지만 물가가 올랐다고 해도 식구들 먹는 양을 줄일 수는 없지 않겠냐”며 “이번 명절에는 4형제가 갈비, 생선, 전, 과일 등으로 음식을 나눠서 준비하기로 했다”며 고물가 시대 명절을 보내는 고충을 전했다.

도현정ㆍ문영규 기자/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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