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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상훈 가업승계협회장 “가업승계는 100년, 200년 기업 징검다리 역할”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창업 1세대가 피땀 흘려 일군 원천기술의 대물림으로 봐 주십시오. 가업승계는 이런 점에서 100년, 200년 기업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합니다.”

강상훈(47) 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장(동양종합식품 대표)은 지난 25일 기자와 만나자 마자 이같이 호소했다. 호화로운 주택과 고급 외산차 등 TV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정형화된 2세 이미지만 보면 모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단적인 예로, 가업승계기업협의회 모임을 위해 전국 160여 회원들에게 통지를 하면 대부분 국내ㆍ외 영업차 출장을 나가 있다는 회신이 돌아온다고 소개했다. 호화생활을 누리려면 진작에 회사 팔아 세금 정산하고 말았지, 고생하며 가업을 물려받겠느냐는 얘기다. 2세들의 한결같은 요구는 가업승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회사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매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뿐이라고 강 회장은 누차 강조했다.

현재 가업승계기업협의회는 창업 2, 3세 160여명의 기업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대다수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릴적부터 16년간 아버지 공장에서 각종 잡일을 도왔던 강 회장은 지난 2005년 부친이 급성폐렴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회사를 떠안게 됐다. 부친의 죽음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수십억원의 상속세 납부 통지서였다.



당장 많은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는 자신 소유의 부동산 매각과 함께 회사 주식을 금융중개기관에 담보로 맡기고 5년에 걸쳐 상속세 마련해 완납했다. 그리고 2010년에야 주식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현재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ㆍ증여세는 물려받은 재산 감정가액의 50%에 이른다.

정부도 이제야 가업승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가업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청산이나 폐업이 속출할 경우 주조ㆍ단조ㆍ도금ㆍ금형ㆍ열처리ㆍ사출 등의 뿌리산업과 일반 제조업분야에서 앞 세대가 30∼40년 넘게 축적해온 기술과 기능이 송두리째 사장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아직 관련세법 손질 등 입법절차가 남았지만 10여년간의 숙원이 풀릴 조짐이다. 최소한 상속세를 내기 위해 회사를 청산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셈이다.

독일은 가업승계 후 5∼7년 등 일정기간 고용을 유지하면 단계적으로 상속세를 깎아 결국 면제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도 최근 업계에 이 같은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는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 또는 매출 1500억원 이하인 중견기업’에만 상속재산의 40%를 과세액에서 공제해 준다. 여기에는 기업을 승계한 뒤 10년간 사업용자산의 80% 이상, 지분 100%를 유지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강 회장은 “가업승계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업을 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많은 상속세는 큰 부담이다. 심지어 설비, 원자재, 재고 등의 경영을 위한 자산까지 세금을 물린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부모로부터 돈을 물려받는 게 아니라 주식과 CEO란 자리를 물려받기 때문에 주식을 팔 경우에만 과세하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즉, 기업을 파는 사람에겐 과세를 하고, 기업을 지속하려는 사람은 부담없이 물려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세금부담 등의 이유로 가업승계를 포기하거나 후계자가 없어 폐업한 중소기업은 연간 1만7750여개에 이른다.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6만8000개나 됐다. 제조업 발전은 차지하더라도 가업승계가 일단 고용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강 회장은 “상속ㆍ증여세를 일거에 물려 가업승계에 부담을 주는 것보다 기업을 운영하게 하면서 법인세를 지속적으로 받는 게 국가 재정상상으로도 유리한 투자”라며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원천기술의 대물림이며, 가업승계는 종착점이 아닌 기업의 영속성을 위한 징검다리”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의 말은 더 비장했다. “100년, 200년 장수기업은 사회적 관심에서 나옵니다. 지금과 같은 세금제도와 ‘부모 잘 만났다’는 투의 질시적 사회분위기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지금 2, 3세들은 앞 세대와 달리 사명감 때문에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가업승계 의지마저 꺾어버린다면 우리나라 산업의 기반은 암담해지는 겁니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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