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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진 청춘의 성장통…‘넌 내게 반했어’
# 그 순간의 우리는 무모했다. 한 켠 어딘가에 불안을 새겼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난관은 늘 함께했어도 매순간이 기회였다. 청춘 속의 우리들은 늘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만 했다. 시커먼 벽이 가로막아도, 장애물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도 달렸다. 훤히 들여다 보일 때에는 더 빨리 달려갔다. 너무 빨라 놓치기도 했고, 너무 늦어 따라갈 수 없기도 했다. 달리는 길 위엔 수많은 사람들의 화사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세상 안에서 성장했다. 전혀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의 인연은 운명처럼 시작됐고, 장난같은 운명 안에서 인연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이별의 순간을 맞고, 피해갈 것 같은 거센 파도가 기어이 우리를 위협했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한 장을 살았다. 불안과 두려움 속의 청춘이었다. 그럴 때마다 당당히 홀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청춘’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위안을 삼았다. ‘넌 내게 반했어’라고. 그러니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다고.

‘그들이 사는 세상’ ‘풀하우스’를 연출한 스타PD 표민수가 수장이 된 청춘물 ‘넌 내게 반했어’가 18일 막을 내렸다. 16부작 미니시리즈의 15부작 종결, 첫 방송 7.6%보다 소폭 하락한 수치, 20% 가까이 올라선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ㆍ19.2%ㆍKBS2), (‘보스를 지켜라’ㆍ 17.8%ㆍSBS) 대전에선 터무늬없는 경쟁력이었다.

박신혜 정용화 등 눈부신 청춘스타들이 그려가는 21세기판 ‘우리들의 천국’을 표방했지만 드라마는 청춘이라는 한 시기를 담기엔 첫 회부터 미흡한 시작이었다. 짜임새없는 스토리와 그것의 엉성한 전개, 다양한 연기로 호평받아온 여주인공 박신혜를 받쳐줄 든든한 상대 연기자들의 부재로 인해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15부 동안 시청자들의 원성은 자자했다.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드라마는 처음이다” “어느 한 부분도 공감이 되지 않는 스토리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었으나 그림같은 영상에 덧붙여지는 OST만큼은 한편의 뮤직비디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단 이 때문에 “65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이 팽배해지는 것은 역시 ‘탄력을 갖추지 못한 스토리’라는 이유로 모아진다.

이즈음 표민수 PD는 메가폰을 내려놓고 대본 작업에 합류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무한한 20대를 그려내기에 그 그릇이 너무 작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청춘,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청춘,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좌절하고 또 다시 서는 청춘의 그림들은 애매모호하게 서있는 캐릭터들로는 표현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치열’ 혹은 ‘열정’ 이라는 단어들로 대체되는 청춘의 한 이름에서 주인공들은 조금도 치열하게 고민하지도, 절박하게 하루를 만나지도 않았다.

인형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한희주(우리)의 고민은 엉뚱한 소년의 등장으로 인해 감정을 아로새긴다. 이들의 만남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서정을 연상시켰지만 그들의 현실은 눈 나리는 겨울의 쓸쓸함은 배제된 가벼운 청춘의 단면이었다. 가야금 소녀(박신혜)에게 발견된 우연한 재능은 그녀를 뮤지컬 배우로 성공시켰고, 기타를 치는 만인의 연인(정용화)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잠시 음악에서 멀어졌다.

이들 모두는 때때로 눈물을 흘리고, 고민 속에 성장하고, 같은 길을 앞서갔던 사람들의 조언을 얻지만 이들의 세계에는 ‘꿈’이든 ‘열정’이든 희망이든, 그 모든 것으로 대표되는 반짝거리는 성장통이 부족했다. 예술대학을 소재로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 무수한 볼거리라도 만들어낼 수도 있었으나, 그 역시 부재다. 엉성하고 사사로운 고민들은 늘 급박하고 긴장감없이 끝을 향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어 더 재미있는 그 한 장의 이름이 ‘청춘’인 것을, 청춘을 청춘답지 못하게 그린 이 드라마는 결국 청춘들의 달리기를 따라잡지도 그 예측불허의 희노애락과 치열한 성장기를 담아내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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