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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속 ‘재벌의 무한 변신’, 어디까지?

DN그룹의 차 회장(박영규 분)은 술집에서 폭행을 당하고 귀가한 아들 차지헌(지성 분)의 얼굴을 보고는 해당 조폭들을 찾아내 응징한다. 가죽장갑을 끼고 조폭을 보복 폭행한 차 회장의 행적은 세간에 알려지면서 결국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선고를 받게 된다.

지난 3일 첫방송을 한 SBS의 수목드라마 ‘보스를 지켜라’는 몇년 전 세간의 화제가 됐던 모 그룹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재벌은 과거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지만, 트렌디 드라마에서 이처럼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던 재벌가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경우는 없었다.

‘출생의 비밀’ 만큼이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재벌’의 모습도 진화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 상황설정과 캐릭터의 성격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 드라마 속 재벌의 진화엔 이유가 있다.

▶재벌, 드라마의 단골 소재…왜?=재벌은 왜 한국 드라마의 단골 소재일까. 우선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높이려면 갈등 구조가 필수인데, 계층 간 갈등은 그 한 축이다. 계층 간 갈등을 다루지 않는 드라마가 드물 정도로 필수요건으로까지 얘기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벌이란 소재는 드라마의 갈등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소재로 자리잡았다”며 “윤석호 PD의 ‘겨울연가’는 계급이 없이 서로 연애만 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아주 예외적인 사례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계급 갈등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은 그 자체로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드라마에서 재벌은 일정 부분 확고히 차지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재벌로 투영돼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벌에 대한 호기심도 재벌이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된 이유다. 일반인이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모습이 아닌 생활을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하기에 일종의 훔쳐보기로서의 재미도 한 이유다. 

여인의 향기 강지욱



대리만족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재벌과 평범한 여성 간의 사랑은 주류 시청자인 여성들에게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일반인과 달리 돈 걱정없이 화려하게 사는 재벌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드라마 속 재벌을 통해 현실에서 내가 이룰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대신 성취해보는 짜릿함도 선사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재벌에 대한 이미지가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도 재벌이 드라마 속 소재로 다양하게 오르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때로 가부장적인 재벌들의 모습은 향수를 일으키기도 한다. 끈끈한 가족관계와 여기에서 비롯된 유산과 가업승계, 부모의 권위 등의 전통적 가족주의 그 중심에 바로 재벌이 있다.

보스를 지켜라 차 회장



▶드라마 속 재벌, 어떻게 달라졌나=드라마 속 재벌은 과거에는 단순히 선망의 대상이나 악역에 그쳤지만, 요즘에는 재벌의 약점이나 고뇌 등이 비교적 심도있게 다뤄지는 추세다. 과거 드라마 속 재벌이나 부유층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캐릭터로 묘사됐다면, 요즘엔 완벽할 것 같지만 뭔가 하나가 빠진 캐릭터가 바로 재벌 2세나 3세다. 여기에 서민층 여주인공이 재벌 후계자의 부족함을 채워줌으로써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많아졌다.

지난 2004년 방송된 ‘파리의 연인’이 이 같은 재벌가의 모습이 변화되는 분기점이 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박신양 분)는 태어날 때부터 수백억원대 재벌가의 아들로 똑똑하고 부유하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캐릭터인데, 뭔가 빠진 캐릭터로 이를 강태영(김정은 분)이 채워주게 된다”며 “이 드라마를 분기점으로, 뭔가 부족한 재벌을 평범한 여주인공이 메워주면서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본격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의 연인 한기주



재벌이 드라마 속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0~1980년대. 당시 재벌, 혹은 부유층의 트레이드마크는 가죽 재킷에 오토바이로 불량한 모습이거나 악역을 담당했다. 재벌에 대한 비호감이 작용한 것이다. 이는 고도성장기 계층 간의 위화감을 반영한 탓이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재벌은 무조건 나쁘다”는 이미지를 탈피한다. 중산층 문화가 형성되면서, 재벌은 더 이상 거북한 존재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재벌에 대한 호감이 서민을 능가하기까지 한다.

1995년 방송된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재벌인 하석주(배용준 분)가 서민층 박인범(이종원 분)보다 호감적으로 그려진 게 대표적인 예다. 1980년대 후반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세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박인범은 다방 천 마담의 큰 아들로,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큰 인물로 부각됐다. 반면 ‘밝은 부잣집 귀공자’ 역할인 하석주는 진미화장품 하일태 회장의 아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 청년으로 등장한다. 서민층 청년 대신 부잣집 귀공자를 좋은 이미지로 역할을 역전시킨 건, 벤처 붐 등 돈을 악의 축의 하나로 보던 인식이 완전히 뒤집어진 현실을 반영한다.

IMF를 맞게 되면서, 재벌의 이미지는 다시 한번 변화를 겪는다. 최근 재벌에 대한 판타지가 유행처럼 번지는 건 그만큼 현실이 팍팍하다는 반증이다. 

미스 리플리 송유현


▶재벌, 직업도 캐릭터도 다양해졌다=과거 드라마 속 재벌들의 묘사가 번지수도 없는 겉모양에 치중해 있다면 최근 드라마는 일상에 밀착돼 비교적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도 흥미롭다. ‘보스를 지켜라’에서는 ‘재벌 보복폭행 사건’을 거의 그대로 재연했을 뿐만 아니라 경영권 분쟁,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재벌회장의 일상생활 속 모습까지 풍자됐다. 재판과정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모습도 연출됐다.

재벌들의 사업분야도 다양해졌다. ‘미쓰 아줌마’의 대형 광고회사 대표 윤정우(김정민 분), ‘미스 리플리’의 몬도그룹 송유현(박유천 분), ‘로맨스 타운’의 킹에셋 자산운용사 강건우(정겨운 분), ‘내 마음이 들리니’의 우경그룹 차동주(김재원 분), ‘내 사랑 내 곁에’의 진성그룹 후계자 고식빈(온주완 분), ‘신기생뎐’의 은성그룹 후계자 아다모(성훈 분), ‘여인의 향기’의 라인투어 대표 강철만의 외아들이자 전략기획본부장인 강지욱(이동욱 분) 등등 드라마 속에 등장한 수많은 재벌은 식품업체나 광고회사, 자산운용사, 여행업체 등으로 직종이 다변화됐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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