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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짱’ 장태평의 초록빛 꿈
더푸른미래재단·미래농수산실천포럼 출범…前 농림수산부장관 퇴임후 행보는 풀냄새로 가득
장관은 매미같은 자리다. 열흘을 울기위해 7년을 땅속에서 우화하는 매미처럼, 능력있고 야심찬 공무원이 너저분한 욕구를 버리고 30년 가까이 업무에 매진해야 간신히 오를 수 있는 자리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오른 장관 자리도 길어야 2년 짧으면 1년에 불과하다. 이상을 실현하기엔 너무 짧고, 정치꾼들에 발목이 잡혀 깊은 좌절감도 맛봐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언론에 뭇매를 맞고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기도 십상이다. 하루하루가 ‘전장’이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공직의 꼭대기지만, 한숨 돌릴 틈도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다. 그리곤 금방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장관들은 재임 중에 ‘본능적으로’ 생명 연장의 꿈을 꾼다. 국가를 위한 원대한 꿈에서부터 좀 넉넉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장관 ‘전역자’들 대부분의 퇴임 후 삶은 뻔하다.

재임시절 자신을, 또는 자신이 밀어주고 끌어주던 힘(?)에 기대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경제적 여유와 이너서클로의 접근성을 모두 주는 로펌, 회계법인, 대기업 등으로 옮기는 사례가 많다. 간혹 연구소, 재단, 포럼 등 그럴듯한 조직을 차려 얼굴마담으로 노후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게 일반적이다.

‘태평짱’.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겉보기는 그렇다. 퇴임 후 반년이 지난 지난 2월 ‘더푸른미래재단’을 발족하고 ‘미래농수산실천포럼’을 출범 시켰다. 그의 직책도 재단 이사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좀 이상하다. 재단도 포럼도 모두 푸른빛. 아니 초록빛이다. 풀냄새가 풍기고 농촌느낌이 난다. 농식품부 장관을 했다곤 하지만 장 이사장은 경제기획원부터 재경부를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경제분야에서 보냈다. 그런 경력이라면 갈 자리가 많을 법도 한데, 굳이 ‘돈 안되는’ 농업관련 단체를 만들었다.

지겨울 정도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8일 서초동의 사무실에서 장 이사장을 만났다. 서초동 남부터미널 근처의 낡은 건물 4층 한 귀퉁이에 자리한 사무실은 좁고 후줄근하다. 접견실과 큰 창이 있는 널찍한 장관 집무실이 아닌, 네댓 평 되어 보이는 ‘이사장실’. 벽쪽을 향해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뒷모습은 왠지 장관 때보다 작아 보였다. 하지만 기자를 맞아주기 위해 고개를 돌린 그의 표정은 장관 때보다 밝았다. 평소보다 검게 그을린 피부 사이로 환한 미소가 드러났다. 


장태평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꿈은 능력있는 진짜 농어업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가 몇 달 전 출범시켜 거의 봉사에 가까운 열정으로 이끄는‘ 미래농수산실천포럼’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다. 농업판‘ 마쓰시타 정경숙’과 같은 곳으로 키워 나갈 꿈에 그의 하루하루는 장관 시절보다 즐겁다.

▶ 언제부턴가 …마음이 농업으로 흘렀다! = (결과적으로 보면) 퇴임을 한 달쯤 앞두고 있던 작년 7월. 장관을 그만두면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장 이사장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 녀석 만나러 가야지. 간 김에 여행도 좀 하고”라고 말했다.

그런데 개각 소식과 함께 퇴임이 결정된 직후에 장 장관은 이전까지와는 좀 다른 말을 했다. “마음이 이상하게 농업으로 흐른다”고. 그리고는 퇴임 후 6개월 만에 푸른재단과 실천포럼이 나왔다.

“알다시피 나는 농업계에서 큰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재경부 같은 경제부처에서 큰 흐름을 보고 전체 경제를 보는 일을 더 많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농업에 대한 관심은 옛날부터 많았다. 그런 피가 흐른다고 할까. 사무관 때 당시 농수산부에서 2년 근무하면서, 국장 때 잠시 있으면서도 우리 농수산업도 다른 산업처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장관을 하면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그러다 장관 그만두고 나오는 날 대통령께서 “장관을 그만두고 나가셔도 그간 진행해오신 농업개혁 작업을 민간에서도 계속 해 주십시오. 장관님 같은 분이 민간에 나가셔서도 정부 정책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하시더라. 그렇게 퇴임하고 나니까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야되나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이왕 할 거면 조직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하자고 답을 낸거다”

▶ 농업의 ‘마츠시타 정경숙’을 만들고 싶다 = 장 이사장이 출범시킨 미래재단과 실천포럼은 “능력있는 진짜 농어업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 각계 전문가들과 기업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졌다. 재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돈 보다는 경영, 예술, 인재개발, 리더십, 회계,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재능과 시간, 뜻을 모았다. 12일부터는 포럼의 실질적인 첫발이라 할 수 있는 ‘Young Power 미래농업 CEO MBA과정’이 열린다.

장 이사장은 실천포럼의 롤모델로 ‘마쓰시타(松下) 정경숙’을 든다. 지금의 파나소닉의 전신인 마쓰시타전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의 국가경영을 해 나갈 진짜 리더를 길러 내겠다는 포부로 1979년 출범시켰던 재단법인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처럼 농업과 농촌의 ‘슈퍼(Super) 인재’를 키우고 싶다. 매년 300~400명을 모아 10년만 양성하면 100억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100명 이상의 농업경영자들이 탄생할 수 있다. 우리 포럼은 그런 장(場)을 만드는 울타리와 마당을 할거다.”

장 이사장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포럼이 배출할 리더들이 우리 농수산업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할 수 있다. 충주에 장안농장이라고 있다. 건설업 하던 유근모 씨가 300만원을 들고 시작한 농장이다. 고급 유기농 쌈채소 농장인데 유 대표가 노력하고 연구해서 회사가 15년 만에 매출 100억원을 한다. 원래는 유 대표 혼자 키워서 납품을 했는데 품질을 인정받고 공급처가 늘다보니 물량이 달리게 됐다.

그래서 그 양반이 동네 친구들 3명에게 같이 재배하자고 했고, 이게 계속 확대돼서 그 일대 전체가 유기농 쌈채소를 재배해 돈을 벌게 됐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협력 농장도 조성됐다. 새로운 형태의 농업회사가 탄생한 거다. 앞으로는 그렇게 될거다. 능력있는 농업 리더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을 해가면서 성장할 거다.

사막에서 사자에게 잡혀먹는 물소들 보면 안타깝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물소를 향해 사자들이 단체로 덤벼든다. 자기 동료가 잡아먹히는 데도 물소들은 구경만 한다. 물소 숫자가 훨씬 많으니까 단체로 달려가기만 해도 사자들이 쉽게 맘대로 못할 텐데.

우리 농업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농수산물 소비의 절반은 이미 마트나 백화점같이 대형화 되는데, 생산자들은 무작정 옛날식의 협동조합으로 버티고 있다. 새로운 조직체로 대응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리더들을 길러내고 싶은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 한국 농업이 살려면 = 장 이사장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난해 8월부터 우리 농정에는 신기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쌀값이 폭락하고 채소값, 과일값이 급등했다. 그가 장관시절엔 두 번이나 조용히 지나갔던 구제역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수많은 소ㆍ돼지가 땅에 파묻혔다. 아예 ‘먹을거리 물가’가 국정 화두가 돼버렸다.

“잘해서 그런거 아니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장 이사장은 “내가 잘한 게 아니라 운이 좋은 거지”라고 말했다. “내가 있을 때도 쌀 직불금 문제, 농협 비리, 멜라민 파동 등 그렇게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 내가 운좋게 표시 잘 넘어온 편”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최근의 시끄러운 농정 상황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배추값 올랐다고 무한정 수입하면 되나. 쌀같이 일년에 한 번 생산하는 품목이면 몰라도 배추는 한두 달이면 자란다. 비싸면 다음 자랄 때까지 다른 것 먹게 하고 빨리 더 키우면 된다. 비가 많이 오고 병충해 오고 해서 생산량이 줄면 농민들은 비싸게 받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그걸 억지로 누르면 결국 농민들이 타격받을 뿐이다. 단기간에 일어나는 문제들까지 그렇게 잡아서는 안된다.”

후배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농정에 대해 꽤 비판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내친 김에 우유문제도 물었다. “지난 몇 년간 생산비가 오른 부분은 분명 보충해 줄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원유값을 무조건 올릴 수는 없다.우리나라의 우유 소비량은 아직 선진국보다 적다. 우유랑 경쟁하는 상품도 많다. 영양가에 비해 값이 이정도니까 우유를 찾는 것이다. 다른 상품들하고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산시스템을 갖추는 논의를 먼저 해야지 돈들어가는 만큼 다 벌충해 달라고 하면 결과적으로 시장을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는 한국농업의 가능성을 확신한다. 자동차도 조선도 반도체도 다 잘하는 나라에서 농업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농업도 하나의 산업이라고 본다. 토마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꾼이 아니라 ‘토마토 생산 기업인’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 농업은 그간 너무 과보호를 받았다는 생각이다.

“네덜란드나 이스라엘같은 이 분야 선진국 조차도 농업, 물산업 이런 것들 키울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걸 당사자들이 치열한 노력으로 이겨낸 것이다. 우리 농업을 보면 안쓰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보호하는 건 답이 아니다. 그건 결국 자립하고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막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키워야 한다. 도전정신과 창의력, 의지를 가지고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하다;.”

▶ 짖지 않지만, 물면 놓지 않는 ‘불독’ =
장태평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독일병정이라고 표현한다. 계속 앞을 향해 걷는다는 뜻에서다. 장태평을 장관으로 모셨던 관료들은 그를 불독이라고 한다. 짖지 않는 불독.

그는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별로 없다. 아랫사람에게도 큰 소리를 거의 치지 않지만, 대신 한번 이야기 한 것은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겼다. 포기도 없다. 이렇게 해서 안되면 저렇게 해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은 힘들다. 그를 모셨던 모 국장은 “차라리 막 소리라도 지르시면 좋겠는데, 안 될 것같은 일도 차분하게 계속 이야기 하시니 오히려 더 무섭다. 무지 피곤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성향은 자녀교육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딸과 아들은 모두 국내 명문대를 나왔다. 딸은 법률 공부를 하고 있고 둘째인 아들은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브로드컴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특별히 미국으로 보낸 것이 아니다. 아들이 아버지 도움없이 혼자 힘으로 미국까지 갔다.

“난 사실 아무 소리도 안했다. 과외같은 것도 안 시키고. 대학도 너희들 가고 싶은 데 아무 곳이나 가라고 했다. 물론 공부해라, 이렇게 해라, 말은 안 했어도 뒤에서 슬금슬금 꼼꼼히 챙기기는 했다(웃음). 한번은 우리 딸아들하고 같은 학년의 애들을 가진 후배랑 내기를 했다. 그 친구는 애들은 어리니까 부모가 계획과 목표를 짜줘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애들은 그냥 자유스럽게 키워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내가 이긴 셈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의욕을 가져야 뭔가 할 수 있다. 그거 외에 뭐가 더 있겠는가. 우리 포럼의 지도자 과정도 33명에서 시작한다. 얼마 안되는 인원이다. 하지만 열정들이 정말 대단하다. 열정있는 사람들 30명만 있어도 조직이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그 30명이 만들어내는 열정의 문화가 사회로 전달된다.”

▶ ‘태평짱’의 장관론 = 장관을 그만두고 나니 제일 좋은 것은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에 눈 뜨는 시간은 같다. 단지 그때는 눈 뜨면 바로 일어났지만 지금은 눈 뜨고도 가만히 누워있다 일어난다(웃음). 좋은 책들도 많이 읽고, 새로운 생각도 많이 한다. 눈치 볼 일 없다는 것도 참 좋다. 제프리 존스 씨가 그러더라. 우리나라는 발전하려면 눈치 덜 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그 말이 정말 맞다.지금은 맘이 편하다. 어디든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맘대로 가고…”

장관시절부터 그의 팬 역할을 했던 트위터, 페이스북 친구들과는 여전히 트윗을 주고받고 글을 올리고 만나기도 하면서 소통을 하고 있다. 그에게 태평짱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SNS 친구들이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은 이제 5000명을 넘어서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됐다. 그는 고위관료 중에서도 유독 SNS에 강했다.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SNS에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사고 방식이 수직적이기보다는 수평적이고, 네트워크적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는 장관시절에도 종종 농식품부 직원들과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둘러앉아 이야기하곤 했다. 그의 포럼 역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보수 없이 다양한 재능을 기부하는 형태다.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선진 농업기업들의 형태도 결국 서로 네트워킹하는 수평적인 조직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장관’이라는 자리에 대해서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장관하는 와중에 다음에 난 뭘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장관하면 안된다. 회사 가진 분들이나 다른 직업 가진 분들이 겸직하시는 것도 안좋다. 장관은 자기 능력을 100% 투입해도 어려운 자리다. 다른 걸 가진 사람이 어떻게 100% 능력을 투입할 수 있나. 인간인 이상 힘들다. 다만 장관들이 퇴임하고서 뭘 하는 걸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장관이나 차관을 한 분들은 그간 쌓아온 지식과 축적된 노하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걸 단순히 썩히는 건 사회적으로도 아깝다. 그 분들이 가진 것들을 사회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통로가 오히려 있었으면 좋겠다. 관계도 없는 로펌같은 데 가서 로비스트 하는 것보다는, 윤리 규정만 지킨다면 차라리 업무와 관련있는 회사에 가서 그 기업과 산업이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겠나.”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사진=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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