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국애니의 빛나는 성취 ‘마당을 나온 암탉’ 일낸다
입양, 인종, 생태, 그리고 꿈과 모험, 모성과 성장, 자유와 비상. 마치 드림웍스의 신작을 보는 듯한 풍성하고 강렬하며 진보적인 내러티브가 있고,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같이 잘 다듬어져 멋지게 표현된 동물캐릭터들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을 보듯 동화적이고 친환경적인 감수성도 살아있다. 유럽 애니메이션같은 회화적 필치도 간간히 엿보인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한국 애니메이션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만들어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멀게는 1967년 한국 최초 장편 ‘홍길동’으로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 이후 몇 십년간의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도전사에서 이정표가 될만한 ‘큰 일을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업계에서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이만한 성취의 근간에는 한국영화의 명가인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제작사 오돌또기의 운명적이고, 야심만만한 만남이 있었다. 


“실사영화에 정통한 충무로의 주류 영화사와 애니 전문 제작사가 기획부터 제작, 배급까지 본격적인 공조체제를 이룬 것으로는 첫 사례입니다. 실사와 애니의 영역 구분이 없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부문간 장벽이 높았고 교류와 네트워크가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애니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스토리나 내러티브가 부족했고, 대중적인 지지를 못받아 흥행에 실패해 왔습니다.”(심재명)

명필름은 ‘접속’부터 ‘공동경비구역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시라노 연애조작단’ 등의 작품으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 최고 제작사로 자리매김한 영화사다. 명필름 심재명(48) 이사가 한국영화에서 ‘가족영화’의 전통을 만들고자 나선 게 2005년. ‘안녕 형아’ ‘아이스케키’를 제작한 후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찾아보자고 했는데, 마침 후배 프로듀서 한명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이 작품은 동화답지 않은 강렬한 이야기와 철학적인 깊이로 5년여전인 당시에도 40만~50만부(현재 100만부)가 팔린 대형 베스트셀러였다. 원작을 읽어본 후 이거다 싶었던 심 대표는 곧바로 판권을 사고자 사계절출판사에 연락했으나 “이미 오돌또기와 영화화 약속이 돼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 대표는 오돌또기 오성윤 감독을 찾았다. 오 감독은 2004년 출판사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영화 제작 양해각서를 맺어놓고 있던 터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당시 영화화 작업은 우리 회사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어요. 공동으로 제작할 충무로의 주류 영화사를 찾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0순위가 명필름이었죠. 그러던 차에 뜻밖에도 명필름 측에서 먼저 제안해왔으니 날아갈 듯했죠.”(오성윤)

한국영화 주류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제작자인 심재명 이사와 서울대 서양화과를 전공했으나 화가의 꿈을 접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며 나섰던 오성윤 감독. 두 63년생 동갑내기는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실사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오 감독이 이끄는 오돌또기는 무수한 아이디어회의와 작화, 수정작업을 해가며 ‘잎싹’(암탉), ‘초록’과 ‘나그네’ (청둥오리), ‘달수’(수달) 등 독창적인 캐릭터 디자인을 탄생시켰고, 명필름과 함께 시나리오 생산에 힘을 쏟았다. 영화제작의 노하우가 출중하고 대중적인 감각이 탁월한 명필름은 제작 과정 전체를 조율하고 이야기의 오락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사전제작단계부터 완성까지 6년이 걸렸다. 50억원의 제작비 투자를 유치하고 목소리 연기를 맡을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 배급사(롯데엔터테인먼트)를 섭외하는 것도 심 이사의 몫이었다.

오 감독은 “동물 중 부리와 날개 달린 새를 의인화하기가 가장 힘들었다”며 “사실적인 묘사와 팔다리를 자유롭게 놀리는 완전한 의인화 사이에서 수정과 숙고를 거듭한 결과 지금과 같이 독창적인 우리만의 캐릭터가 표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 이사는 원작의 핵심적인 가치와 주옥같은 대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했고, 이야기가 확실한 기승전결을 갖춘 탄탄한 구조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박철민이 목소리를 연기하며 시종 웃음을 주는 감초 캐릭터인 수달이나 영화의 절정이자 역동적인 액션장면인 청둥오리의 비행대회는 원작에 없는 것들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선 문소리, 유승호, 박철민, 최민식 등이 전문 성우들과 함께 목소리를 맡았다. 예정보다 다소 늘어난 제작기간 2년은 오히려 이들 배우에게 작품의 의미를 더 크게 했다. 청둥오리를 키우는 암탉 ‘잎싹’역의 문소리는 이번 영화에 참여하던 중 만삭의 예비맘이 됐고, 극중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청둥오리 ‘초록’ 역의 유승호는 마치 계획된 것처럼 목소리가 성숙해지면서 극중 캐릭터의 성장을 반영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심 이사와 오 감독은 “부모와 자녀뿐 아니라 젊은층까지 모든 세대가 각기 다른 감성과 태도로 즐기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원래 난용종(계란만 얻을 목적으로 사육하는 닭)이었던 잎싹이 넓은 세상을 동경하다가 마침내 양계장을 뛰쳐나오게 되고, 청둥오리 알을 품어 아기 ‘초록’을 얻게 되면서 겪는 모험담을 그렸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