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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자가 식물에서 찾아낸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
철학과 식물학의 학문 간 거리는 아득해 보인다. 철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도서관의 100번대 서가를 기웃거릴 것이고, 식물학 책을 찾는다면 480번대 서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편의적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 두 학문은 서로 스미고 짜이며 발전해 왔으며 식물학은 여러 철학적 이론들을 양산해냈다.

이를 테면 루소, 칸트 등 철학자나 린네, 아당송 등 식물학자에게서 두 학문의 교집합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식물의 생식을 예로 들자면 꽃의 목적에 관한 연구는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을 꽃 피웠다. 어떤 자연물도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합목적적인 내부 구조를 갖는다는 생각은 존재의 이유를 살피는 모든 탐구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칸트는 꽃에서 ‘미적 합목적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꽃의 아름다움에서 자연목적과 별개로 취향과 상상력을 위한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본 것이다.

한편 식물학적 지식은 뜻하지 않게 외설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린네의 ‘자웅분류법’은 외설이라 비판받았다. 반대로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꽃을 예로 들어 남매 간의 혼인을 옹호하는 등 식물학은 결혼과 도덕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낳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식물학의 분류법은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사고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고전적인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식물학이 인간의 정신과 다른 학문의 행보에 미친 영향, 학문 사이의 경계를 살피는 일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넓고 깊은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철학과 식물학 사이, 넓게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 통섭의 교두보를 놓는 저작으로 학문 간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빛난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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