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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파정치, 치열한 공천드라마 막 오르다
미래권력 향한 줄서기‘晝李夜朴’‘越朴’등 신조어 양산…전당대회 앞둔 민주당 HQ계, DY·SK계와 한판승부 예고
소속인사 세 불리기

파워게임 과정서

배타적 계파이익 집착

상생·화합보단 대립 야기

치열한 당내경쟁이

정당정치 발전 자양분

일부선 긍정적 해석도





정치권에서 계파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계파는 정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뭉치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게다가 유력 정치인을 구심점으로 삼으면 결속력은 배가된다.

같은 권력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고 식사자리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면 친분관계가 형성되는 게 우리네 정서. 그러면서 그들은 공통 주제인 권력을 이야기하고, 권력으로 가는 길 한가운데 놓인 공천을 논하게 된다.

때문에 다른 계파 정치인과 식사라도 할라치면 뉴스가 되는 현실이다. 여당 핵심 관계자는 “계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한다.

계파 수장으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들은 스스로 계파를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현역 정치인이나 정치 지망생이 몰려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권력을 좇는 사람들은 스스로 ‘○○계’라고 말하며 소속감을 드러낸다.

계파의 종착역은 물론 정권 창출이다.

이 과정에서 친목이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 데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되면서 친목모임은 계파를 형성하게 된다. 대권을 위해 세를 규합해야 하는 계파 수장은 공천을 매개로 계파 소속 정치인을 달랜다. 계파 수장과 계파 소속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뭉치기 좋아하고 권력자를 좇는 계파의 흥망성쇠는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를 맞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월박’(越朴ㆍ계파를 친박근혜계로 옮기는 것), ‘주이야박’(晝李夜朴ㆍ낮에는 친이명박계, 밤에는 친박근혜계).

여의도 정가에서 꾸준히 나오는 말이다. 최근 들어 ‘주이야박’은 사라진 것 같다. 여권의 위기가 미래권력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평가되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면서 친이계는 몰락 양반에 가까운 처지가 돼 버렸다.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친이계의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대표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고,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한 뒤 결성된 친이계의 ‘민생토론방’이 내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못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신임 대표의 취임 일성은 “계파 활동을 하는 자, 공천없다”였다. 당 내에선 반발 움직임이 거셌다.

특히 미래권력 1순위 세력인 친박계가 그랬다. 친이계를 물리치고 주류 자리를 꿰찬 친박계는 자신에게 돌아올 공천 불이익을 염두에 두는가 하면 친홍준표계 구축을 경계했다.

고지를 눈 앞에 둔 친박계는 계파 활동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그럼 나부터 공천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홍 대표를 몰아붙였다.

‘HQㆍDYㆍSK계.’

민주당 빅3인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붙여진 민주당 계파다.

지난해 10월 손 대표가 당 대표에 선출됐을 때만 하더라도 ‘빅3’가 당내 지분을 3등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손 대표가 올 4월 한나라당 텃밭인 분당을 지역에서 금배지를 거머쥐자 손학규계의 비중이 커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이제 계파 간 한판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당권과 대권을 향한 계파 간 대립이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권 이후를 책임질 대안정치세력이라는 국민적 기대는 계파 대립을 하면 할수록 반비례할 전망이다.

계파 대립의 본질은 무엇일까.

“대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중립성향의 여당 의원), “배타적 계파이익 챙기기는 부당하다”(재선의 야당 의원).

특정 계파가 권력을 잡으면 상대 계파는 긴장한다.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선 ‘공천=당선’ 등식은 상당부분 유효하다.

때문에 여야에선 상향식 공천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천개혁을 일궈내면 계파 대립은 물론 해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정권 창출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파인사가 한 명이라도 더 정치권에 입문해야 하는데, 공천권이 국민에게 있을 경우 계파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데 기초하고 있다.

현재로선 ‘인재영입’도 “나를 쳐내기 위한 상대 계파의 계략”이라고들 한다.

여의도 정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결은 물론 같은 정당 안에서도 대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대립이 그것이다.

특히 내년 총선과 대선은 8개월 시차를 두고 치러진다. 총선 승리가 대선 승리로 이어질지 아니면 총선 패배가 약이 돼 대선에서 승리할지 각 계파의 계산기는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

계파정치가 상생과 화합 대신 대립을 불러왔다는 데 이견은 거의 없다. 공천을 놓고서는 분명 그랬다. 그러나 정책을 둘러싼 당내 치열한 경쟁은 정당정치 발전의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첫 정당 내 계파간 대립구도 형성

불완전 통합 여파 14대총선 참패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金’은 이름만으로도 정치권 계파의 상징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양대산맥을 형성한 가운데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충청권 맹주를 자임하며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들 3계파에 뿌리를 둔 계파는 현존하고 있다.


정당 내 계파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공화당의 3당 합당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안에는 민정계와 민주계, 공화계 인사들이 각각 자리잡았다. 이전에는 계파 수장이 단일정당을 이끌어 왔지만, 민자당 안에는 여러 계파가 존재했다.

민자당은 ‘한지붕 세가족’ 지적을 받았다. 결국 불완전한 통합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의 총선 참패를 불러왔다. 특히 1990년 10월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3인의 내각제개헌 합의 각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민자당은 한때 분당 위기를 맞기도 했다.

YS는 14대 총선 참패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총선이 끝난 지 사흘 만에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 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14대 대선에서 YS는 41.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의 DJ(33.4%), 국민당의 정주영(16.1%) 후보를 꺾었다.

1994년말 민자당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했다. 당시 최형우 내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민주계가 JP의 2선 후퇴를 주장했다. ‘포스트 YS’를 노린 파워게임도 전개됐다.

JP는 다음해 민자당을 탈당하고 자민련을 창당했다. 같은해 6월 지방선거에서 JP는 ‘충청도 핫바지론’을 들고 나와 충청권을 석권했다. 공화계의 부상은 DJ의 정계 복귀에 영향을 미쳤고, DJP(김대중과 김종필) 연합은 15대 대선승리를 이끌어냈다.

DJP 공조는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붕괴됐다. DJ 아들의 비리가 연거푸 터져나오자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민주당은 드라마틱한 대선 경선을 통해 ‘노무현’ 상품을 만들어내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여권의 계파 갈등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점화됐다. 당 개혁이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의 말에 따라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등 친노그룹은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다. 동교동계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동교동계 등 구주류 측 의원들은 민주당의 법통을 수호하기로 모임을 구성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2003년 9월 민주당을 탈당했고, 같은 해 11월 열린우리당은 창당대회를 가졌다. 친노계가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조동석 기자/ds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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