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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 전자책, 디지털 시장의 비밀
며칠전, 우리 문화재에 대해 평소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대학 교수 한 분이 책을 내고 싶다며 책 유통과 관련해 조언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사재를 털어 오래 공을 들인 작업으로 처음엔 출판사를 찾아갔는데 인세로 고작 몇백만원을 제시하자 그는 자신이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고 했다. 디자인 작업을 할 사람을 고르고, 인쇄업자를 찾아 그가 가본을 해온 책은 요즘 북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 배치와 글의 흐름, 글씨체, 제목 등 전문 편집자의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책의 성격에 잘 맞는 에디터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중견 이상 출판사들의 편집자들은 제 일 하기도 바쁘니 실력있는 프리랜서 에디터를 구하는 건 더더욱 하늘의 별따기다. 딱 보고 처방전을 낼 줄 아는 편집자,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무얼 덜어내고 보태야 할 지 단번에 알아채는 편집자는 그야말로 귀하다.

10여권의 대중적인 철학책을 낸 한 인기 저자는 편집자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출판사는 나중이다. 그래서 출판사 사장이 있는 자리에 편집자를 함께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용된 편집자가 제대로 할 말을 못하는 딱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지 않는 배려다. 편집자는 그에게 1차 독자이자 연인이다. 모자람을 보태주며 사랑과 노력으로 함께 책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베스트셀러 저자나 내로라 하는 작가 대부분이 이런 편집자의 손길을 거친다. 전자책의 출현과 디지털 출판시대에도 이는 변치 않는 가치다.

최근 정부가 붐이 일고 있는 북스캔 서비스를 저작권법 위반이란 해석을 내놨다. 저작권자나 출판권자의 허락을 받지않고 파일로 만들 경우 현행법의 테두리에선 불법이다. 사적 이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바꿔 말해 자기가 산 책을 공공의 복사기를 이용해 북스캔하는 것도 안된다.

현재 북스캔 사업을 하는 업체는 10여군데로 추정된다. 주로 대학가에서 무거운 외국어 전공서적을 파일로 대체하는 수요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인터넷에는 ‘북스캔 1000원’‘70~80% 할인’ 호객행위가 넘친다. 책 스캔 후 PDF파일을 제공하고 파일을 파기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현재 저작권자와 계약을 맺고 이뤄지는 북스캔은 거의 없다고 문화부는 보고 있다. 한마디로 거의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의 수요가 있는 만큼 합법화의 길을 터줘야 하는 정부의 고민이 여기 있다. 복사전송권 처럼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시장의 길을 터줄려면 출판업체의 호응이 있어야 하지만 부정적이다.

사실 북스캔은 실물의 책이 없으면 불가능한 2차 작업이다. 거기에 편집의 공 따윈 없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출판계 통용되는 편집자 비용은 페이지당 평균 1만원으로 친다. 평생에 걸친 작업일 수 있는 저자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게 단 한번의 스캔으로 날아갈 수 있다. 파일의 불법유통을 막을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이 전자책을 꺼리는 데는 이런 저작권 보호와 출판· 편집의 가치 상실의 문제가 있다. 전자책의 활성화는 콘텐츠의 문제가 아닐 지도 모른다. 신뢰는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엄연한 시장의 비밀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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