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은 팀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장시켜 나갔다. 썰렁한 개그도 이수근에게 가면 살아날 때가 많다. 하지만 혼자 튀려 하거나 나대지 않는다. 독설과 막말도 거의 없는 생활형 개그다.
개그맨으로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고생도 많았고 버라이어티 예능에 적응하는 데에도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2006년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 코너로 뒤늦게 뜨자 2007년 ‘1박2일’ 전신인 ‘준비했어요’ 멤버로 들어갔다. 여기서 이수근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후 하려면 이미 늦었다고 한다.
이수근은 “공개코미디와 리얼버라이어티는 너무 달라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공개코미디를 했던 사람은 짜여진 시간, 만들어진 대본 개그에 익숙하다. 반면 버라이어티는 즉석에서 보여주는 ‘끼’에 의존한다”면서 “나는 방목에 대한 적응이 전혀 돼 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과정에서 그는 1년 가까이 ‘병풍수근’ ‘투명인간’ 소리를 들었다. 2008년 초만 해도 인터넷 커뮤니티 네티즌은 이런 이수근을 두고 ‘수근신’으로 불렀다. ‘수근병신’이라는 의미였다. ‘웃길 것 같은데 못 웃겨서’ 생긴 별명이었다.
원형탈모증이 생길 정도로 힘들어 포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는 당시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런 이수근에게 도움을 준 것은 멤버들과 제작진이었다. 강호동은 “수근아, 너,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야”라고 용기를 불어넣었고，이명한 당시 PD는 “자신감을 가져라. 절대 자르지 않는다”고 확신을 줬다.
그랬던 이수근은 개그에서 터득한 상황극을 리얼버라이어티에 접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내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준에 올랐다. 네티즌은 이제 수근신을 ‘수근신(神)’으로 해석했다. 이수근에게 강호동(호동座)만이 갖고 있던 본좌급인 ‘수근좌(座)’라는 칭호가 붙기도 했다.
그는 ‘1박2일’에 적응하기 전에도 리얼버라이어티의 생명이랄 수 있는 캐릭터는 만들어졌다. 여행 버라이어티에서 필수인 운전과 잡일을 도맡아 ‘일꾼’이라는 캐릭터를 얻었다. ‘국민일꾼’ 캐릭터는 1년간의 부적응기를 떨쳐낸 무기였다. 초기 이런 그에 대해 이명한 당시 PD는 “이수근은 시골에 가서 삽만 들면 바로 현지에 적응하는 로컬형”이라고 했다.
▲울고 웃던 아이…웃고 울리는 레크레이션 강사로
이수근은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주읍리에서 농사와 양봉,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가 외지로 나가 장사를 하는 바람에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됐다.
“어머니, 아버지랑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죠. 할머니 혼자 오래 저를 기르셨고… 워낙 생활력이 강했던 아버지가 나중엔 잘해주셨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컸어요.”
남학교에 다녔던 그는 늘 인기 몰이를 했다. 수업 전에 다같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 늘 오락반장, 리더였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밝고 유쾌한 학교생활을 잘 몰랐다. 할머니 집에서 자라야 했던 아이는 늘 ‘눈치’ 보느라 바빴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탓인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이부자리에 자주 실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통지표엔 늘 ‘밝다’고 써있죠. 그런데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자주 울던 그런 기억이 아직 선해요.”
많이 울고, 또 많이 웃으며 보낸 10대 시절. 그래도 오아시스는 있었으니 바로 외삼촌. 하교길 버스가 집 근처를 지나면 원두막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외삼촌이 있다. 지금의 이수근 만큼이나, 당시 동네 학생들에겐 유명인사였다. 늘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던 그 분이 바로 ‘이수근 음악사랑’의 원천이었다.
그리고 늘 꿈을 꿨다. ‘희망사항’ 그런거 말고 진짜 ‘꿈’이다. 중학교 때부터 연예인이 되어서 다시 고향에 내려와 박수받는 그런 꿈을 꿨다. 한마디로 ‘금의환향’이다. 이제 동문회도 가끔 가고, 고향분들도 찾아뵙는다. 소위 ‘스타’ 가 됐지만 아직도 꿈을 꾼다. 예전과 똑같은 교복을 입은 그 시절 ‘첫사랑’ 이 등장해 ‘수근아, 싸인해죠’라며 웃는단다.
어릴때부터 웃기는 데는 리러였던 이수근은 서일대 시절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잔디밭에서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기타를 쳤다. ‘잘나가는’ 레크레이션 강사였다. 10년간 차곡차곡 다져온 시간들이 있었다. 자신만의 ‘애드립’ 과 ‘웃음에 대한 정의’가 있다. 그 막강한 내공이 이젠 적재적소에서 ‘빵빵’ 터진다.
“지방의 수련원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를 했죠.” 그는 이미 평택서 유명세를 탔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온 학생들을 웃기고, 또 울리기도 했다. “‘자, 여러분 어두운 밤이 찾아왔습니다’ 하면서 기타 치며 등대지기를 부르면, 100% 다 울었습니다.” 넉살 좋게 “내가 좀 했죠”라며 귀여운(?) 허세를 부리지만, 그는 사실 낯가림이 아주 심한 사람이다. 어릴때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유는 그저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서울에 와서도 한강 둔치에서 돗자리를 깔고 무수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개콘’ 동료 후배: 요즘 후배들요? 다들 ‘엄친아’
이수근에게 ‘개그콘서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곳이다. 그래서 그는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잘 나가고 있지만 ‘개콘’을 떠나지 않는다. 수시로 개콘 후배들이 연습하는 연구동에 나와 아이디어를 짠다. 600회를 기점으로 ‘봉숭아학당’이 문을 닫으며 이수근이 잠깐 ‘개콘’에서 하차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언제건 ‘개콘’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코너를 준비하겠단다.
“아유, 요즘에 뭐 개그맨들도 선배, 후배 그런거 그렇게 엄격하지도 않고…자주 볼 시간도 없죠.”
최근엔 개그맨들 사이에도 가수ㆍ탤런트 못지 않게 ‘엄친아’가 많아졌다. 개그 프로그램에 코너장이 있어서 막강한 선배들이 ‘실력행사’를 하던 예전과도 분위기가 다르다. 선배의 도움 없어도 쉴새없이 ‘빵빵’ 한 아이디어가 흘러나온다. 제작진과 대화도 많이 하고 잘난(?)만큼 열정도 뒤지지 않는다. 전반적인 문화 자체가 바뀐 것.
“그래도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주 한잔도 하면 좋잖아요…아무리 개개인이 뛰어나도 호흡이 중요하니까… 너무 사생활을 침해 안하는 분위기도 조금 섭섭하긴 하죠.”(웃음)
이렇게 ‘요즘 후배’ 들에 대한 솔직한 평을 하면서 그는 절친한 동료 김병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모두 열심히 하지만, 열정으로 1등은 누가 뭐래도 병만이예요. 슬랩스틱 코미디, 정말 아무나 못하죠. 개그맨들의 모든 코너가 다 힘들게 만들어진 거지만, 요즘시대 병만이 개그는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러면서 ‘개콘’ 3대 파벌설에 대해선 그저 “성격ㆍ코드상 나눠진 것 뿐” 이라고 해명(?)했다.
“그냥, 우스개소리인거 아시잖아요. 준호 대희형, 성호형, 병만이와 나, 이렇게 성향 비슷한 사람들끼리 구분된거죠.” 그렇다면 ‘이수근 병만파’는 주로 어떤 성향이냐고 물었더니 “같이 소주 한잔 해도 좋은 사람들” 이라고 했다. 그렇게 모여 같이 웃고, 같이 마신다. 아주 그냥 ‘죽이 잘 맞아’ 너무 즐겁다.
▲1박2일과 동료들: 365일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
이수근에게 ‘1박2일’은 요즘 생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이랄 수 있다. 그만큼 애착이 많은 곳이다. 이수근이 적응하지 못할때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1박 2일’멤버들은 하룻밤짜리 사이가 아니예요. 365일, 평생을 함께 가고픈 소중한 사람들이죠.”
늘 활기 넘치는 강호동, 자칭 ‘외모 라이벌’ 김종민, ‘은초딩’ 은지원, 수줍은 총각 엄태웅, 예의바른 이승기. 모두 이수근의 스승이자 또 친구다.
강호동은 오프닝만큼 클로징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니, 때론 오프닝의 10배 기운으로 마무리를 한다.
“대학로 공연때도 마지막엔 모두 나와서 춤추고 하거든요. 언제나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이예요. 그런 ‘파이팅’ 자세를 강호동 선배님께 배웠죠.”
강호동은 지난 5년간 함께 하며 가장 도와준게 많은 선배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포스’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래 봐서 ‘흉내’만큼은 가장 잘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태웅이 형은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죠. ‘술 한잔해요’ 하면 바로 ‘어디야’ 하는 사람, 가식없고 솔직하고, 처음 봤을 때부터 편한게 매력이예요.”
은지원은 이수근이 웃기지 못했때도 “대한민국에서 형이 제일 웃긴다”고 용기를 주었다. 이승기는 지와 덕을 갖춘 후배인데, 요즘은 이수근과 함께 축구를 하며 ‘체’도 갖췄다고 한다.
“사실 저의 ‘1박2일’ 적응을 가장 많이 도와준 멤버는 MC몽입니다. 지금 상황이 안타깝지만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멤버는 MC몽이라 할 수 있어요.”
얼마전 ‘1박2일’은 여배우 특집을 했다. 같은 시간대 타 방송사의 ‘나는 가수다’를 신경 쓴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하하. 저도 즐겨 보고, 멤버들끼리 노래 얘기도 많이 해요. 특히, 임재범씨가 ‘너를 위해’를 불렀을 때는 펑펑 울었어요. 아내가 ‘뭐하냐’며 놀라더군요.”
데뷔 전,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계란빵 장사를 할때 많이 들었던 노래였다. 그는 그래서 경쟁 프로그램이지만 ‘나가수’ 가 좋다. 과거의 기억을 살려주는 노래가 있고, 옛 추억이 성큼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의 독점이 뭐 좋은가요, 3개 방송사가 함께 경쟁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예요.”
▲가족:“아내 이상형은 나 아닌 류승범”
이수근의 아내는 TV에 류승범이 나오면 아무 것도 못 듣는다. 오래전부터 ‘광팬’이다.
“아내는 연애때부터 ‘류승범이 좋다’고 했어요. 정말이지, 순수하게 제 마음만 보고 결혼한거죠. 어휴, 힘들었어요, 하하…세상에 이상형이랑 결혼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연애 때 함께 류승 범이 출연한 영화는 전부 다 봤다. 섭섭하지 않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그래도 내 이상형은 아내가 맞거든요.”(웃음)
얼마 전, 이수근의 둘째 아이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졌다. 오른쪽 뇌에 구멍이 났단다. 걸어다닐 나이가됐는데도 이제 간신히 기어다닌다. 병명은 뇌성마비.
“재활치료중인데, 평생 해야 한다네요. 조기치료를 하면 된다니까 걱정 마세요. 세상에 우리 애보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속상하다고 밝히기도 죄송스러워요.”
이수근에게 가족은 자신을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다. 사람이 그리워 하교길에 매일 울던 이수근을 다독여 주던 외할머니. 가난했지만 강하게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그리고 류승범이 이상형임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준 아내, 토끼 같은 두 아이. 인터뷰 전날 이수근은 그 중 하나를 잃었다. 할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린것.
“어제 돌아가셨는데, 녹화때문에 임종을 못 지켰죠. 내일이 발인이예요. 얼른 뵈러 가고 싶어요.”
▲미래:내가 ‘키컸으면’ ‘수근신’은 없다
이수근은 요즘, 선배들이나 PD들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부쩍 많이 듣는다. 공부를 안해서가 아니라, 좀 더 비상하라는 의미다. 일 욕심이 많고, 목표가 뚜렷한 그를 알기에 하는 얘기일게다.
“버라이어티 예능을 시작한 지 4~5년 됐죠. 아직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메인 진행자로 우뚝 서고 싶어요,”
이미 제안은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칼(?)을 갈고 있다. 아직은 ‘개그맨 이수근’을 덜 보여줫다는 느낌이다.
“특별히 장르의 제한은 없어요. 모든 것을 다 하고 싶고 ‘뭐든지 참 잘한다’ 소리를 듣는 게 목표예요. 그런 목표가 있는게 사는 즐거움이죠.”
‘상상플러스’를 하며 탁재훈과 신정환에게 배웠다. 또 ‘1박2일’을 하며 강호동에게도 배웠다. 이경규, 신동엽, 유재석, 이휘재 등과도 프로그램을 같이 하며 배운게 많다.
“그분들이 하루아침에 그런 자리에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런 것을 6~7개월 안에 배우겠다는 건 욕심이고, 인기 많은 사람들은 확실한 자신만의 애드립과 코드가 있어요. 아직 전 더 공부해야해요.”
이수근에게 키가 작지만, 거기서 오는 친근감이 누구보다 강한 경쟁력이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그렇죠. 이수근이 노래처럼 ‘키컸으면’ 정말 좋았을까요? (웃음) , 지금의 ‘수근신(神)’은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키 큰 사람을 보면 ‘와, 좋겠다’ 해요, 하하.”
이수근은 가끔 마포구 상암동의 집 근처 카페에 나가도 사람들이 부담없이 툭툭 친단다. ‘우와, 연예인’이 아닌 ‘와, 이수근’이라고 한다고. 그래서 이수근은 희망을 갖는다. 연예인 답지 않은, 부담감 없는 외모와 이미지로 친숙함을 구축한 게 무기란 걸 안다.
“병만이도 그렇고, 전 키부터 겸손하잖아요? ‘숙이고 들어가는 키’라고 하죠.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겸손함과 친숙함, 인간미가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승부수는 이런 걸로 띄울 겁니다.”
서병기ㆍ박동미 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