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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밭길 10년 ‘2003 프라하에서 2011 더반까지’

  • 기사입력 2011-07-0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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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피눈물나는 도전 끝에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많은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성원을 보냈기에 유치성공의 감동은 컸다. 하지만 지난 두차례의 아쉬운 탈락 순간 역시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날 수 밖에 없다.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 싶었던 2003년 첫번째 도전은 예상 외의 선전으로 이어졌지만, 여러가지 악재에 부딪혀 밴쿠버에 무릎을 꿇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춰 나섰던 2007년엔 경쟁도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소치에 발목을 잡히며 다시 한번 좌절해야했다. 평창은 눈물 속에 지난 10년간 가시밭길을 걸어와야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여기고 나섰던 3번째 도전에서 극적인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유치 도전사를 돌아본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을 연다는 것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였다.

그러나 97년 무주에서 동계유니버시아드, 99년 평창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동계올림픽 개최’라는 꿈이 자라났다. 99년 아시안게임 후 평창은 2010 동계올림픽 도전의사를 밝혔고, 무주 역시 도전장을 냈다. 불꽃튀는 경합 끝에 평창이 적합한 후보지로 낙점되면서 본격적인 유치도전사가 시작된다.

당시 한국은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라는 스포츠 외교의 거물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열린 평창의 첫 올림픽유치 도전은 김 위원장과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내부와 외부의 싸움을 병행하는 힘겨운 형국이었다. 김 부위원장과 당시 올림픽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삼성이 힘을 모아 유치에 나서줄 것을 기대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음이 일었다. 캐나다의 밴쿠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라는 만만찮은 상대들을 상대하는 평창으로서는 힘든 고비를 넘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2008년 하계올림픽이 아시아의 베이징에서 개최되기로 한 것도 걸림돌이 됐다. 결국 평창은 1차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2차투표에서 밴쿠버에 53-56, 3표차로 분패했다. 밴쿠버는 당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거셌지만 투표는 현지 분위기와 무관했다. 

<YONHAP PHOTO-1312> 첫 고배 (서울=연합뉴스) 강원도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성패를 가르는 운명의 날이 밝았다.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는 7일(한국시간) 0시에 발표된다 사진은 지난 2003년 7월 강원도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 후보지 결선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패하자 강원도청앞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 << 연합 DB >> 2011.7.6 jeong@yna.co.kr << 이 사진은 신문 편집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사진으로 개최지 발표 이전에는 인터넷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1-07-06 16:27:25/Media Only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첫 고배 (서울=연합뉴스) 강원도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성패를 가르는 운명의 날이 밝았다. 2018동계올림픽 개최지는 7일(한국시간) 0시에 발표된다 사진은 지난 2003년 7월 강원도 평창이 2010년 동계올림픽 후보지 결선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패하자 강원도청앞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 << 연합 DB >> 2011.7.6 jeong@yna.co.kr << 이 사진은 신문 편집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사진으로 개최지 발표 이전에는 인터넷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11-07-06 16:27:25/Media Only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첫 도전에서 기적을 이룰 뻔했다가 실패한 다음날. 김진선 강원지사(현 유치위 특임대사)는 출국을 앞두고 가진 취재진과의 오찬에서 눈물을 쏟으며 “정말 억울합니다. 유치할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말 못할 얘기는 속으로 삼키면서.

하지만 평창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무주와 다시 한번 내부경쟁을 벌여야했다. 2010 유치도전 당시 ‘평창이 유치실패하면 2014년엔 무주에 도전권을 준다’는 합의서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주의 스키장이 국제대회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4년간 힘들여 알린 평창이라는 브랜드를 포기하고 다시 무주로 나선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라는 명분론도 힘을 얻어 평창에게 두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평창의 상대는 2010년에 나섰던 잘츠부르크와 러시아의 소치였다. 잘츠부르크 역시 지역민들의 지지도가 약했고, 소치는 기반시설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곳이었다. 평창의 낙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유치전 막판 마초적인 이미지를 앞세워 원맨쇼를 펼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존재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결국 평창은 또 2차투표에서 소치에 47-51, 4표차로 졌다.

다시 도전할 여력이 있을까.

한껏 부풀었다 실망하길 두차례.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이번 더반 유치전을 준비했다. 최선을 다하고, 성의를 담는 ‘아마추어적인 소박함’ 대신 부문별 전문가들에게 자문하며 모든 준비를 업그레이드 했다.

과거 평창이 우세하다는 평가에 들뜨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지 말자는 각오로 자중했고, 오직 현지 실사와 프리젠테이션에 집중했다. 결국 10년여동안 동계올림픽을 향해 걸어왔던 가시밭길이 끝나자 2018 개최지 확정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사진=2003년과 2007년 유치에 실패한 뒤 눈물을 흘리던 평창주민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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