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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 못갑니다”…산사태도 이긴 孝心
“흙이 계속 떨어지는데 너라도 피해”, “어머니를 혼자 두고 어떻게 혼자 도망가요.”

억수 같은 장마비가 쏟아진 지난 29일. 김은희(48ㆍ여), 임세진(22ㆍ군인) 모자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김 씨는 군에서 다리를 다치고 휴가나온 아들의 치료를 위해 국군통합병원으로 SM7 승용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오후 1시2분께, 서울 노원구 초안산 앞 월계 뚝방길을 지나던 이들에게 말 그대로 비극이 ‘덮쳐왔다’. 공사로 깎아낸 산 한쪽 면이 무너지면서 1500여t의 흙이 달리던 차량을 덮친 것이다. 미처 피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긴박한 사고였다.

무너진 흙더미에 차 지붕이 찌그러지면서 운전 중이던 김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차 안에 있는 이들의 어깨까지 순식간에 토사가 차오른 상황이었다.

아들 임 씨는 정신을 차리고 차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다행이 조수석 쪽은 흙이 많이 차오르지 않아 문을 열 수 있었다. 임 씨는 차 밖으로 나와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흙더미에 묻힌 차는 윗부분만 간신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임 씨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미친듯이 흙더미를 손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얼마쯤 흙을 팠을까. 간신히 차 문을 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임 씨는 어머니를 차에서 꺼내기 위해 잡아당겼지만 안전벨트에 걸린 왼쪽 다리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정신이 든 김 씨는 산쪽을 내다봤다. 무너진 산위에서 계속해 흙과 돌멩이가 떨어지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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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노원구 초안산 인근 산사태현장에서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정희조 기자/checho@

위험하다 생각한 김 씨는 아들에게 “흙이 또 쏟아질 테니 빨리 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임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세 번째 흙더미가 쏟아졌다. 임 씨는 토사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김 씨는 아들에게 “나는 못 빠져 나갈 것 같으니 너라도 빨리 가! 흙이 또 쏟아진단 말이야”라며 울면서 외쳤다. 하지만 아들은 “어떻게 어머니를 혼자 두고 가요”라며 계속 필사의 구조를 감행했다.

천만다행으로 흙더미는 무너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한 남성이 주머니 칼로 김 씨의 발을 잡고 있던 안전벨트를 끊어줬다.

김 씨 모자는 서둘러 차를 덮고 있는 흙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은 구조하러온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고 큰 상처를 입지 않아 가벼운 조취 후 귀가할 수 있었다.

김 씨는 “다친 아들이 무너지는 흙더미를 등으로 받아내며 나를 구해주는 모습을 보며 고맙고 뭉클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이에 대해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재현ㆍ박병국 기자/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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