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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세론’의 명암...김영삼 뜨고, 이회창, 이인제 지고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 가운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지역 할거전을 벌인 13대 대선과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본선보다 치열한 예선전을 펼친 17대 대선을 제외한 나머지 3차례 선거에서 ‘대세론’이 등장했다.

대세론은 특정 후보가 대선을 한두 해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30% 이상의 압도적 지지율로 독주할 때를 이르는 말로, 특정 시점의 여론조사 1위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강력한 국민 지지를 상징한다.

때문에 대세론의 주인공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예비 대통령’으로 불리곤 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정치에서 대세론자라고 해서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과거 대선의 역사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1992년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전년도 3당 합당의 여세를 몰아 대세론의 첫 주인공이 됐으며, 대선 투표 결과 김대중 후보를 200만표 차로 여유 있게 이겼다.

이후 1997년과 2002년에는 이회창 대세론이 힘을 얻었다. 이 후보는 두 번의 대선 레이스에서 30% 이상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며 막힘 없는 대권 가도를 달렸다. 이 후보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엔 나도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고 자신했을 정도다.

이 후보는 그러나 두 차례 선거에서 각각 39만표, 57만표 차이로 낙선했다. 이 후보의 지지율 자체가 크게 꺼지진 않았지만 1997년엔 아들의 병역 문제와 이인제 후보의 탈당 및 출마, 2002년엔 강력한 ‘노풍(노무현 바람)’에 밀려 무너졌다.

노풍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이도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대세론자였던 이인제 후보였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2002년 민주당이 경선을 하기 직전까지 이인제 의원이 모든 지역에서 앞서 갔으나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1위에 오르면서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은 꺾였다”고 설명했다.

내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또 하나의 대세론이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이 그것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한 이후로도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며 여타 대선후보들과 20%포인트 안팎의 큰 지지율 격차를 보이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야권 주자들과의 1대1 가상대결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이회창 대세론이 짧은 기간 내에 형성돼 내구성이 약했던 반면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은 장기 지속적이며 내구력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당은 야권 후보가 결정되고 양자 대결구도가 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빠지고 대등한 싸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춘병기자@madamr123>

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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