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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애사만 넘쳐나는 통속적 가벼움…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로 불린 드라마는 많다. 여자주인공이 셋 이상 등장해 사랑과 우정, 일과 결혼에 대해 말을 하면 이렇게 부르곤 했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2009)’, 여자는 다 그래(2010)‘ 등과 같이 인기 미드에 편승해 2030 여성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시도는 숱하게 있었던 것. 여기에 또 한 편의 드라마도 이렇게 불리고 있다. 일은 없고 사랑만, 혹은 연애사만 남은 ’로맨스가 필요해(tvN)‘다.

▶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로맨스가 필요해’=뉴욕 맨하튼을 무대로 그려지는 네 여자의 사랑과 우정, 일과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섹스 앤 더 시티‘ 이야기다. 여섯 시즌이 이어질 동안 변함없던 것들이 있다. 일주일 중 하루, 어느 늦은 오전에 뉴욕의 번화가에서 네 명의 주인공은 모여앉아 브런치와 수다를 즐겼다. 거리로 나설 때면 한 손에는 스타벅스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에르메스를 들었다. 빅백보다는 클러치가 더 어울렸던 그녀들의 발에는 마놀로 블라닉 정도가 적당했다.

트렌드를 입고 마시던 그녀들의 인기는 한국의 거리로 이어졌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즐기는 ’브런치‘는 유행처럼 번져 가로수길, 정자동, 서래마을, 청담동 등을 중심으로 브런치 하우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는 비가 오면 신고 있던 구두는 벗고 맨발로 달릴 만큼 하이힐에 대한 애정이 극진했다. '신상아가'를 입에 달고 사는 서인영보다 일찍이 한 수 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에 목숨 거는 그녀에 수많은 여성들이 빙의됐다. 현실에서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을지라도 스토리보다 더 달콤했던 패션코드를 들고 나온 그녀들의 이야기는 외피야 어찌됐건 사랑과 우정, 커리어를 말했고 성(性)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없었다. 여섯 개의 시즌을 거치고 두 편의 영화로 남은 '섹스 앤 더 시티'와 닮아있다는 것이 바로 '로맨스가 필요해(감독 이창한, 극본 정현정)'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남녀관계를 주제로 삶을 풀어가는 칼럼리스트 캐리가 장면장면마다 내래이션을 통해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 물음을 대신 전했던 것처럼 '로맨스가 필요해'에서는 조여정이 그 역할을 하며 여성들의 심리를 서술하고 있다. 드라마는 영화 '방자전'을 통해 베이글녀로 등극한 조여정을 비롯해 8등신 마네킹 몸매의 최여진, 탈(脫)아나운서를 선언하며 연기자 변신을 시도한 최송현이 주연을 맡아 연애 타입도, 성격도, 직업도 다른 서른셋 세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 자잘한 감정의 나열ㆍ연애사만 넘쳐나는 통속적인 가벼움=지난 2010년 방영된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MBC)'는 전형적인 골드미스들의 이야기였다. 드라마에 출연했던 박진희의 입을 빌려 30대 중반, 서른넷이라는 나이의 여자에 대한 정의는 이렇게 내려졌다. “최소 4번의 연애경험이 있는 NO처녀, 경험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여자”라는 뜻이다.

현재까지의 '로맨스가 필요해'는 위의 정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선 드라마다.

연애기간은 10년이었지만 순탄치 않은 10년의 연애사가 곳곳에 독처럼 퍼진 호텔리어 인영(조여정)의 사랑, 3개월에 한 번씩 남자를 갈아치우는 쇼핑몰 CEO 서연(최여진), 이혼전문 변호사지만 실상은 연애 한 번 못해본 쑥맥 현주(최송현)가 그 주인공들이다.

10년을 만난 연인의 바람기에 이별했지만 '재활용' 중에 '남자 재활용'만한 것이 없다고 믿는 인영은 다시 10년의 연인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금이 갔던 관계다. 지난한 세월을 보내며 의무감과 책임감이라는 이름이 사랑 앞에 먼저 놓인 연인의 현실이 인영에게 드리워졌다. 3개월에 한 번씩 남자를 바꿔가며 만나던 서연은 유부남이 된 옛 남자와의 하룻밤으로 간통죄로 고소당할 위기에 놓였다. 서연이라는 캐릭터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킴 캐트럴)와 마찬가지로 자유연애주의다. 또 결혼식 당일날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굳이 울고 불고 비참해하지 않았다. 혼자 신혼여행도 떠났다. 알 수 없는 여자 현주, 직업의 동일함과 그로 인해 풍기는 분위기가 미란다(신시아 닉슨)의 닮은꼴이다.

드라마는 굳이 포장을 하지는 않는다. 사랑에 아니 남자에 목을 맬지언정 허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그런 '척'이 없다는 점에서는 담백하달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는 얄팍하다. 시청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논리와 설득력을 갖춘 스토리는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유부남과의 관계를 다그치자 눈물을 흘리며 '혼자 있는게 싫다'고 말하는 서연을 안아주며 인영은 '지금 서연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해줄 친구였다'고 했다. 어린 여배우의 끈질긴 관심을 받는 영화감독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인영은 '저 당돌한 아이와 언젠가 경쟁을 하게 될 것 같아 두렵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성수씨가 저 아이의 당돌함을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자잘하고 구차한 감정들은 3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넘어서는 여성들이 안고 가기엔 너무나 단편적인 감정들인데 드라마는 이것들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거기에 남편이 오지 않은 결혼식을 일일 신랑을 불러 치룬 현주가 신혼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말렸다. 당연했다. 상처가 될까 두려웠음에도 눈물 한 방울 없이 자신이 소중하다는 연애 쑥맥 친구 를 혼자 둘 수 없었지만, 면세점에서 사와야하는 쇼핑 품목에 냉큼 혼자 보내는 신혼여행 계획에 찬성한다. 이 대목에서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와 자유와 새로운 세상에서의 남자를 위해!'라고.

연애경험이 한 번 이상 있는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선을 말하지만 그것은 흔해빠진, 뒤돌아보면 잊혀질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특히 내래이션으로 펼쳐지는 인영의 감정들은 언뜻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듯 보이나 그것이 드라마의 줄기로 자리하기엔 지나치게 ’자잘한 감정들‘의 나열이 되고 있다. 드라마는 가볍고 구차한 감정들은 내세우고 상식밖의 이야기는 우정의 잣대를 들이댔다. 

여자들의 연애사는 있되 미래에 대한 계획과 꿈은 없으며, 일에 대한 열정이나 고민은 아직 비치지 않는다. 초호화판 재벌가의 드라마에 신데렐라 스토리, 출생의 비밀에 속고 속이기에 연속인 요즘 드라마에 넌더리난 시청자는 많다. 때문에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이 드라마의 솔직담백함이 더 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로지 연애의 가치가 지상 최대의 것인냥 달려가는 얄팍하고 통속적인 주제와 감정들을 나열하는 드라마에 과연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2, 30대 여성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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