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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왕도 1위가 될 수 없는 날…영국 ‘엡섬 더비’를 아시나요
여왕과 레이스를 펼쳐본 일이 있는가. 그것도 실제 입헌군주인 영국의 여왕과 영국에서라면 가능하다. 엡섬 더비(Epsom Derby)에서라면 그러하다.

올해도 더비 우승을 향한 여왕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지난 4일(현지시간) 열린 제232회 ‘엡섬 더비’에서 ‘푸르무아(Pour Moi)’가 폭발적인 뒷심을 발휘하면서 여왕의 경주마 ‘칼톤하우스(Carton House)’를 3위로 밀어내고 우승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2400m 경주로 펼쳐진 올해 더비에는 총 13마리의 경주마가 출전했다. 경기 초반부터 ‘멤피스 테네시(Memphis Tennessee)’가 계속 선행을 이끌었으나,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푸르무아’ ‘칼톤하우스’ ‘트레저 비치(Treasure Beach)’가 일제히 달려나오면서 치열한 막판 경합을 벌였다. 결승선 앞까지 혼전으로 치닫던 경주는 폭발적인 뒷심을 보여준 ‘푸르무아’가 ‘트레저 비치’와 ‘칼톤하우스’를 각각 2위와 3위로 밀어내면서 극적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영국의 ‘엡섬 더비’는 경마 종주국인 영국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다. 제1ㆍ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더비는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영국인의 자부심이 담긴 대회다. 현재 경마를 시행하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영국의 ‘엡섬 더비’를 본떠 자체적으로 ‘더비’(미국:켄터키 더비, 일본:재팬 더비, 홍콩:홍콩 더비, 한국:코리안 더비) 대회를 시행하고 있다. 자국에서 가장 뛰어난 3세 경주마를 가리는 대회로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경마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엡섬 더비’ 도전은 올해가 두 번째였다. 25두 내외의 경주마를 보유하는 그녀는 매년 이들을 주요 경마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다. ‘엡섬 더비’의 경우, 지난 1981년에 ‘처치 퍼레이드(Church Parade)’라는 경주마를 내세웠으나 5위에 그쳤다. 약 30년 만의 재도전이었던 올해 더비에서는 미국산 3세 경주마 ‘칼톤하우스’를 출전시켰지만 ‘더비 경주 우승마의 마주’라는 평생소원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영국 왕실 입장에서는 1909년 ‘에드워드 7세’가 소유한 ‘미노루(Minoru)’의 우승 이후 백 년 동안 더비 경주 우승마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네 살 때 할아버지 조지 5세로부터 조랑말을 선물받은 뒤부터 말과 경마에 관심을 기울였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가 “총리보다 더비 경주 우승마의 마주가 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엡섬 우승’이 영국인에게 주는 영예는 퍽 남다른 것이긴 하다.
엡섬 더비는 엘리자베스 2세마저 우승을 노릴 정도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다. 여왕의 말은 올해도 우승을 놓쳤다. [엡섬(영국)=AP연합]

기실 마주(馬主)에 대한 선진국의 유별난 평가와 위상은 오랜 전통이다. 경마는 중세 귀족들이 자신들 소유 말들로 달리기 시합을 연 데서 비롯됐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마주는 주로 사회 지도층이나 저명인사들로 구성됐다. 마주가 되면 단순히 경주마를 소유한다는 의미를 넘어 주류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사교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이 마주로 활동하는 사례도 많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나 뉴욕 양키스의 구단주였던 조지 스타인브레너, 할리우드의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미국 미디어계의 큰손 테트 터너 등이 그 예다.

마사회 관계자는 “사회 지도층의 사교 수단뿐만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마주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며 “우리나라 경마에서도 마주가 말산업 발전과 국민여가 선용이라는 경마의 존재가치를 구현하는 명예와 영광의 자리로 인식되기를 기대해 본다”고 전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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