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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의 늪에 빠지다
1억년 세월 품은 찬연한 생명의 빛…마름·자라풀·개구리밥 우포늪은 온통 녹색융단

소벌·나무벌·모래벌·쪽지벌 여의도만한 천연늪

1500여종 동식물 어우러진 생태천국

이른 아침 물안개 속 꿈결처럼 거닐면

장대 거룻배 한 척 내 마음 고요히 젓고 가네…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처음 그댈 보았지 (중략) 멈출 수가 없었어 그땐’ (조관우 ‘늪’ 中)

‘늪’이란 한 음절 단어는 그 발음과 형태만으로도 어쩐지 깊다. 그것도 습함과 어둠을 포함한 깊음이다. ‘질척하다’는 말 따위가 거기서 잉태된 것만 같다. ‘늪에 간다’보다는 ‘늪에 빠져든다’는 말이 더 자연스레 들린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는 ‘죽음의 늪(the Dead Marshes)’에 빠져든다.

경남 창녕에 가면 큰 늪이 있다. 우포늪. 6월의 늪은 죽음이나 헤어날 수 없는 추락 같은 이미지와 오히려 대척된다. 녹음(綠陰)과 생명이 어느 때보다 찬연히 피어난다. 원시에서 뻗어나온 때묻지 않은 싱그러운 푸름이 1억년 세월을 뚫고 방문자를 반긴다.

창녕은 우포늪으로 인해 생태 투어의 보고다. 우포늪은 담수 면적이 2.3㎢에 이르는 천연 늪으로 면적이 여의도만 하다. 국내 최대 규모로 1500여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 천국이다.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지정됐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등록돼 보호되고 있다. 우포늪이 생성된 것은 약 1억4000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늪은 제방을 경계로 4곳으로 구분된다. 현지 주민들은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으로 나눠 부른다. 곳에 따라 개성이 있다. 


우포는 소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예전부터 소벌로도 불렸다. 나무가 무성했던 목포늪은 나무벌, 모래가 많았던 사지포는 모래벌이라는 친근한 이름을 지녔다. 우포 서쪽의 쪽지벌은 네 개의 늪 중에서 가장 작다.

여름이 오는 6월이면 우포늪은 무성한 초록 잎들로 수면을 꾸민다. 왕버들나무의 군락. 물풀의 왕이라 불리는 가시연꽃도 커다란 잎을 과시하며 늪의 신비감을 더한다.

이 밖에 마름, 자라풀, 개구리밥 등이 녹색 융단처럼 늪을 감싼다. 해오라기, 백로, 쇠물닭 등 여름 철새가 날아들어 이곳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6월의 우포늪은 생명으로 넘쳐난다. 왕버들과 가시연꽃 군락이 수면 위로 신비로운 푸른 빛을 발산한다. 여름 철새가 날아든다. 해가 지면 별밭을 올려다본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우포늪은 시시각각 다르다. 이른 아침의 운치가 그 중 으뜸이다. 늪 곳곳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꿈 같은 분위기를 풀어낸다. 그 사이로 물새가 날아오르고 우포늪의 상징인 장대 거룻배가 오간다.

해가 지면 늪은 별밭 아래 누워 있다. 늪 주변에 다른 빛이 없기 때문에 이 일대의 별은 유달리 또렷하게 빛난다. 여기 사는 온갖 동물들의 소리까지 어우러지면 늪은 자연의 심포니 홀이 된다. 별자리 감상은 우포늪 8경 중 하나다.

우포늪을 탐방할 때 남쪽 초입 생태전시관 인근만 휙 둘러봐서는 안 된다. 비경을 지나칠 수 있다.

북쪽 목포의 장재마을은 왕버들 군락으로 원시적인 멋을 뽐낸다. 왕버들 군락도 8경 중 하나다. 왕버들 수림 안으로 들어서면 자운영 군락이 고요를 노래한다.

우포 북단의 소목마을에서는 장대 거룻배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장대 거룻배는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다. 몇몇 어부들에게만 고기잡이가 허용돼 새벽녘 한가롭게 배가 오가는 정경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낸다.

우포늪을 탐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좋은 길은 목포제방, 주매제방을 넘어 목포, 우포, 사지포 일대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다. 요사이 걷기 여행 열풍까지 이어지면서 이른 아침 이곳을 걷는 젊은 여행자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남쪽 생태전시관을 둘러본 뒤 여기서 대여해주는 자전거를 타고 늪의 관찰로를 이동할 수도 있다. 우포늪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환경단체인 ‘푸른 우포사람들’은 우포늪에 대한 친절한 안내와 함께 우포자연학습원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늪의 식생과 역사에 관한 생태 체험에도 참가할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heralmd.com




화왕산 관룡사·부곡온천·교동고분군…

마음 다스리러 창녕 갑니다


거대한 생태 보고인 우포늪 외에도 창녕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명소 몇 곳을 숨겨두고 있다.

이곳 명물인 화왕산은 관룡사를 거치는 코스가 좋다. 통일신라시대 창건됐으리라 추정되는 관룡사는 몇 차례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통도사의 말사(末寺)로서 신라 8대 사찰이었다고 한다. 보물인 대웅전 뒤로 웅장한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져 초입부터 시야를 압도한다. 많은 불교 유적들을 뒤로하고 용선대에 오르면 보물 295호로 등재된 석조석가여래좌상이 기다린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석가여래좌상은 멀리 화왕산을 한눈에 조망하는 위치에 세워져 더욱 신비로운 자태를 풍긴다.

늪 산책과 산행으로 누적된 피로는 부곡온천에서 풀면 된다. 이곳은 예로부터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가마 ‘부(釜)’자를 써 부곡(釜谷)이라 불렸다. 자연 분출된 온천수는 국내 최고의 온도를 자랑한다. 이곳 온천지구에는 물놀이 시설인 부곡하와이가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이 즐겨 찾는다. 창녕의 깔끔한 숙박시설은 대부분 이곳에 밀집돼 있다. 숙소마다 지하에 온천시설을 갖췄다.

창녕읍 내에도 유적이 여럿이다. 읍내 만옥정 공원에서는 신라 진흥왕이 서기 561년에 건립한 국보인 신라 진흥왕척경비가 세워져 있다. 창녕객사, 퇴천3층석탑 등도 창녕에 고풍스런 분위기를 드리운다. 가야시대 고분인 교동고분군 사이를 거닐거나 창녕 석리 성씨 고가촌에서 오래된 한옥들을 구경하는 것도 늪 못잖게 마음을 고즈넉함으로 이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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