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비가 낳은 서해 유일의 단오행사 … ‘법성포 단오제’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민물이 에스(S)자를 그리듯 들척인 오목한 곳에 남북으로 강을 끼고 서해바다와 만나는 곳.

조선 시대 실학자 청담(淸潭) 이중환 선생이 “조수가 들어오면 바로 앞에 물이 돌아 모여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가 빗살처럼 촘촘해 사람들이 작은 서호(중국 저장 성의 호수)라고 한다”고 아름다움을 칭찬했던 곳. 바로 법성포다. 굴비로 이름난 그곳.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 무렵이면 이 법성포에서 단오제가 열린다. ‘법성포 굴비 단오제’다. 올해도 지난 3~6일지 어김없이 단오제가 열렸다.

단오제 앞에 붙은 ‘굴비’라는 단어가 자칫 느닷없게 느껴지지만, 법성포단오제는 알고 보면 4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행사다.

그 굴비가 ‘서해안 유일의 단오제’를 탄생하게 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법성포단오제의 유래를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한다.

먼저 ‘조창(漕倉) 기원설’이다. 법성포는 고려 때부터 전라도 지역의 조창 역할을 해왔다. 고려 성종 11년에 부용창이 설립돼, 이후로도 국가 재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 중종 때는 영산포창이 폐창되면서 호남 제1의 조창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조창이 들어서면 세곡을 지키기 위한 군인들이 주둔하게 된다. 바로 그렇게 주둔하던 수군과 지역민이 단오 때마다 천신과 자연에 제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던 행사가 단오제로 발전했다는 것이 조창기원설이다. 그때 단오제를 치를 비용을 굴비를 팔아 마련했다는 이야기다.

‘파시(波市) 기원설’은 아예 굴비가 주인공이다. “법성포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조기 맛이 기막히더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기의 산란기인 3~4월에 전국의 어선과 어부들이 법성포구에 몰려들어 시장을 형성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매년 봄에 온 나라의 상선이 모여들어 그물로 고기를 잡아 파는데 떠드는 소리가 서울 저잣거리 같다”고 돼 있을 정도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단오 때가 되면 함께 제전을 드렸다는 이야기다.

단오제에 대한 법성포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동네서 웬 단오제냐고 물으면 “뭔소리여. 여그가 옛날에 수군 1만호가 주둔하던 데여. 그때부터 수백년을 해온겨. 벌교나 영산포나 저짝서도 단오제 한다고 하는디, 우리랑은 차원이 다르제…” 하고 단오의 기원을 쭉 늘어놓는다.

실제로 법성포단오제는 다른 지역의 단오제와는 사뭇 다르다. 긴 대나무를 이용해 수백미터 밖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난장깃발을 만드는 것으로 단오제가 시작된다. 난장에는 과거부터 단오제 행사의 주체 역할을 했던 부부상 조직을 의미하는 짚신과 패랭이, 백목 등이 걸린다.

그렇게 시작한 단오제는 그 근원과 시초를 더듬는 다양한 행사로 꾸려졌다. ‘오방돌기’라고 이름 지어진 문굿부터 당산제, 어민들과 주둔하던 수군들이 친교 차원에서 벌였다던 민속줄다리기, 그네뛰기, 창포 머리감기 등이 차례차례 이어진다.

해안가에서 벌어지는 행사인 만큼 ‘용왕제’ ‘칠산바다 어장 뱃노래’ 등 바다와 관계된 행사들이 유독 많다는 것도 이곳 단오제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것이 악사들을 배에 태우고 한가락을 즐기는 ‘선유놀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배에 여자가 타면 부정 탄다’는 미신 때문에 배에 좀처럼 여성을 들이지 않지만 이곳에선 여자들도 배를 탄다. 조기를 팔아 형편은 넉넉해도 바깥나들이가 자유롭지 않았던 여염집 부녀자들이 이날만큼은 여흥을 즐기라는 뜻에서다.

용왕제를 지내면서 바다에 돼지머리가 아닌 소머리를 던지는 유일한 곳도 법성포다. 예로부터 법성 땅의 모양새가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소의 머리 부분쯤에 해당하는 바다에 소머리를 던져온 것이다.

단오제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난장과 대동놀이는 예로부터 이름난 소리꾼들이나 광대들을 배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때는 전주의 대사습놀이를 웃돌 정도로 법성포의 흥과 멋은 명성이 자자했다. 나성균 전남대 교수는 “구한말의 명창인 주행민 선생이나 대금과 삼현육각의 명수 김영조 선생, 육자배기와 장구, 북의 명인으로 꼽히는 김학준 선생 등 많은 명인 명창이 법성포단오제를 통해 배출됐다”고 설명한다.

문화적 가치가 높은 전통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망과 염원을 담은 노란 풍등을 봄 하늘에 띄우는 풍등행사나 모싯잎송편 만들기, 그네뛰기ㆍ씨름대회, 창포 머리감기 체험 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물론 법성포까지 와서 굴비를 빠뜨릴 순 없다.

몇 해 전 한 방송국에서 같은 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전국으로 흩어 말렸는데, 법성포에서 말린 것이 가장 맛있다는 과학적 결과가 나왔다. 법성포 굴비가 소금과 바람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인근에 신안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소금산지가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법성포 소금을 으뜸으로 친다. 양해일 단오보존회 사무국장은 “여름이면 뻘이 들어오지만 겨울이 되면 모두 빠져나가고 모래만 남는다. 그렇게 뻘 들어왔을 때 만들어지는 소금이 최고다. 성분 검사를 해보면 다른 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네랄 같은 성분이 높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좋은 소금으로 조기를 염장하고 나면, 이번엔 바람이 거든다. 법성포에는 여름에도 북서풍이 분다. 포구 쪽으로 타고 들어오는 바다를 따라 바람이 같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법성포에는 일 년 내내 굴비를 말리기 좋은 환경이 유지된다. 이곳에서 말리는 굴비에는 신기하게도 파리가 끼질 않는다. 그렇게 100일을 말린 굴비는 연탄불에 구워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기막힌 맛을 낸다. 고추장에 푹 담아 숙성시킨 뒤 냉수나 녹차 물에 말은 밥과 먹으면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다.

올해도 이 굴비 맛과 단오제를 즐기기 위해 10만명 가까운 인파가 법성포를 찾았다. 단오제가 열리는 행사장은 물론 포구 내 400개 굴비가게에 사람이 넘쳐났다.

하지만 법성포단오제의 가장 놀라운 점은 몰려드는 사람도, 굴비 맛도 아니다. 행사가 철저하게 민간 주도로 이뤄진다는 부분이다. 별것 아닌 축제를 걸고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보조금을 타내는 축제가 많은 상황에서, 법성포 지역민은 해마다 상당수 자비를 들여가며 축제를 연다. 용왕제를 지내는 배도, 행사에 쓰는 무대도 모두 지역민이 자비를 들여 마련하는 것이다.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축제 전후로 일시적으로 고용되는 사무국 여직원 1명뿐.

강철 법성포 단오보존회장은 “법성포단오제의 소중한 가치를 대대손손 지키기 위해 전통행사를 재현하는 데에 지역민 모두가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축제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축제가 끝나고 나면 7월부터는 다들 부지런히 굴비 말려야 추석 때 장사를 해요”라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말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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