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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째 벽제화장장 청소 김정섭씨 “인생, 살 만하다”
새벽 1시. 자명종이 울린다. 20년째다.

오늘도 일어났다. 나의 일터는 출근하기 힘든 곳. 출근 시간은 오전 2시다.

까만 밤, 출근하기란 힘겹다. 그리고 또 무섭다. 그러나 나의 일터는 그보다 더 무서운 곳. 쏟아지는 잠을 참고 무서운 어둠 속을 헤치며 매일 출근한다.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서울시립승화원. 사람들이 ‘벽제 화장장’이라고 더 자주 부르는 여기가 나의 일터다. 여기서 나의 직함은 환경미화원. 그러나 내 업무는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다.

출근하면 곧장 화로를 들러본다. 바로 전날 시신을 태우던 그 화로다. 평균 섭씨 900도, 최고 1200도까지 올라가는 화로 안은 여전히 후끈하다. 그나마 식은 게 이 정도다. 화로의 가동 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 가동을 멈춘 뒤 오전 2시는 돼야 사람이 들어갈 만큼 온도가 내린다. 내 출근 시간이 오전 2시인 까닭이다.

하루 동안 23개 화로가 매일 쉴 새 없이 시신을 ‘처리’한다. 이 화장장에서 재가 되는 시신은 하루 평균 107구. 내 업무는 바로 이 일을 하는 23개의 화로 청소다.

깜깜한 밤, 시신을 태우던 화로를 혼자서 청소하기란 힘겹다. 그리고 또 무섭다.

찜질방 같은 화로 안을 일일이 쓸고 닦다 보면 한겨울에도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이곳은 재와 먼지투성이다. 마스크를 안 쓰면 숨 쉴 때마다 이 먼지들이 코와 입으로 들어간다. 23개 화로에서 모은 잔재는 40㎏가량. 이를 마대자루에 담아 보관했다가 한 달에 두 번, 파주 용미리공원묘지로 보내는 것도 내 업무다.

힘겨웠다. 또 무서웠다. 시신이 누웠던 곳을 쓸고 닦는 일. 지금도 쉽지 않다. 물론 시작할 때보다는 익숙해졌다. 그러나 요즘도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소름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어서 함께 일할 직원을 구해야지. 그러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원자가 없다. 어렵게 데려와도 3일을 못 넘긴다. 외국인 노동자도 고개를 젓더니 다시 안 나왔다. 나도 못 견디고 도망간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떠났었다. 다른 일을 해 보려고. 그런데 잘 안 됐다. 막다른 골목에서 시골에 계신 노모, 자폐증에 걸린 연년생 딸과 아들, 맞벌이하는 아내를 생각하니 이 일을 할 의욕이 다시 생겼다.

주변의 따뜻한 배려는 큰 힘이 됐다. 지난 연말 새로 부임한 승화원장은 “김정섭(50) 씨, 힘든 일 해줘 고맙다”며 술을 권하더니 뽀뽀까지 해줬다. 그리고 ‘상금’도 줬다.

연말 승화원은 회사(서울시설공단) 직원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상금은 100만원. 상금 용처를 고민하던 원장님은 내 등을 두드리며 상금 봉투를 건넸다. 핑. 작은 배려에 눈물이 났다. 원장님도 울었다.

모든 사람 예외없이 한 줌 재로 돌아가는 인생, 허무한가. 난 그 재를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는데. 마음이 겸손하면 행복이 다가온다. 그럴싸한 일자리를 찾는가.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게 위대한 거다. 계약직으로 시작한 나는 지금 특정직으로 바뀌어 58세까지 정년도 보장받았다.

새벽 1시, 다시 자명종이 울린다. 인생, 살 만하지 않나?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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