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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시청자와 함께한 여행 ‘걸세’…휴먼다큐물로 퇴색 아쉬움
KBS의 대표적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5월 한 달 동안 가정의 달 특별기획으로 ‘시청자와 함께하는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방송하고 있다. 신청건수만 무려 1만2000여건이나 됐다.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낙점된 4팀의 여행자들이 참가해, 지난 7일 스페인, 17일 남아공, 21일 호주 멜버른 편이 각각 방송됐다. 모처럼 시청자에게 선물을 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시청자 투어가 이 프로그램의 매력과 특징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여행지의 볼 것과 먹을 만한 식당 등을 가이드하는 일반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다. 여행자가 여행지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색다른 경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주관적인 여행 감성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축구를 좋아하며 밝게 자라는 두 중학생과 사회복지사의 스페인 여행은 시청자 3명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스페인 왕궁 방문, 투우와 플라멩코 관람,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쓴 감옥 방문, 바르셀로나 축구장 방문 등 여행 가고 싶은 사람에게 11박12일 동안 여기저기 보여주고 먹여주는 정도에 그쳤다. 생생한 여행 체험은 거의 없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도 “‘걸세’만의 특징이 부각되지 않는다. 여행자 입장에서 느낀 솔직한 감정이 특징인데, 여행지를 그냥 둘러보는 모습 위주였다. 시청자의 시각에서 느낀 소감이 전해지지 않아 아쉬웠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엄마와 헤어져 살았던 아들과 여동생이 포함된 한 가족의 남아공 여행기는 갑자기 ‘인간극장’을 보는 듯했다. 희망봉 등 낯선 곳의 풍물을 접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신선함을 만끽하면서 여행지에서 새로운 감동을 받다가 갑자기 가족 간의 안타까운 과거사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봐야 하니 혼란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가족의 갈등과 화해 등을 보여주는 휴먼 다큐는 ‘걸세’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많다. 굳이 남아공까지 가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가족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을지는 의문이다. 세번째인 40년지기 소방관 3총사의 호주 멜버른 여행도 여행지를 소개하는 일반 여행기와 다를 게 없었다. 직업이 소방관이라 현지 소방서를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민속 악기 등을 파는 시장, 금광 발견지인 발라랏, 열기구 탑승,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한 골목 등은 이미 다른 여행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코스와 거의 같았다.

시청자 송지연 씨는 “가족단위 여행이 나오면서부터는 프로그램의 초점에서 조용히 혼자서 여행하는 느낌이 없어지고 등장 인물과 풍경이 중첩돼 혼란스럽고 부산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라며 완곡조로 불만을 제기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고정 시청자가 적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평소 해외 여행을 가기 힘든 시청자를 골라 외국 여행을 보내주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시청자 특집을 위해 프로그램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걸세’ 시청자들은 이전 형식으로 빨리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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