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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으로 가는’ 금융감독기구 개편논의
저축은행 사태로 촉발된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다. 저축은행의 막대한 부실을 야기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모든 책임이 마치 금융감독원에 있는 양 몰아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서다.

‘은행’이란 이름을 붙이기에 민망할 정도로 온갖 불법ㆍ탈법 행위가 저질러진 저축은행을 탄생시킨 정책 당국자들의 반성은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권을 가진 금감원을 희생양으로 삼아 서둘러 수습하려는 것이다. 그 동안 저축은행의 불법 PF대출과 분식회계를 잡아내지 못해 ‘눈뜬 장님’이 된 금감원과 그 조직 속에서 온갖 비리를 저질러온 일부 직원들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게 맞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면 앞으로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이 문제다=우선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ㆍ제제권은 공권력만이 가능한 고도의 행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IMF 외환위기 이후 ‘통합 금감원’을 출범시킨 배경과 의미를 무시한채 금감원의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 독점권을 해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이 문제다.

최근 재부상하고 있는 ‘한국은행에 금융회사 단독조사권 부여’ 논란은 그래서 정부와 감독당국, 한은과 금융회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지난 9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공권력의 행정작용인 금융감독권을 그냥 아무 기관에나 주자고 할 수는 없다”고 한 말도 금융회사 감독을 둘러싼 유관기관간의 밥그릇 싸움으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한은의 기능강화’ 논의는 그 동안 물가안정에만 매몰돼 있던 중앙은행에 금융안정 기능을 부여해 거시 건전성 감독권한을 강화하자는 취지에 출발한 것이다. 한은에 금융회사 단독조사권을 주자는 것도 금융안정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금융안정 기능 강화를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부여한 한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미시적인 검사ㆍ제제권한은 여전히 금감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 소속 이성남(민주당) 의원은 11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어디 편을 들 생각은 없지만, 금융감독의 오랜 노하우는 금감원에 있지 한은에 있지 않다”며 “앞으로 논의는 금감원이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하면 금융기관 검사권한을 제대로 행사할지에 모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금감원 검사 담당 부원장보와 국민은행 감사, 한은 금융통화위원 등을 지낸 인물이다.

▶구더기 무서우니 장 안 담그겠다?=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이후 나타난 금융감독 수장의 행태를 보면 ‘구더기가 무서우니 아예 장을 담그지 않겠다’는 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권혁세 금감위원장은 금감원 검사역들이 시중 금융회사 직원들과 사적으로 만나는 행위를 일체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성남 의원은 “저축은행 사태는 금감원이 시장의 정보에 늦고, 잘 몰라서 생긴 문제인데 아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금감원 내부의 인사와 운영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들어 금융감독기구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따로 두는 2원화 체제로 운영돼 왔다.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금감원장에 관료출신들이 임명되다보니 금감원 내부 구성원들은 온통 관료의 눈치만 보기에 바빴다.

금감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모 컨설팅 회사 대표는 “국장 이상까지 올라간 전문성 있는 임직원들은 그나마 나중에 연봉을 많이 주는 금융회사 감사직으로 가는데 만족했고, 하부 직원들은 전문성을 키우기보다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의 전문성이 높아질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금융감독 혁신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금융감독 체제의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성남 의원은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금감원이 잘못한 게 많지만 그렇다고 금감원의 기능을 빼앗아버리려 해선 안된다”며 “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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