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관련업계와 인근 공인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한정식집 수정은 지난해 2월 이미 휴업에 들어갔고, 최근에 간판과 서울시 교육청 일대 안내표지판이 모두 철거됐다.
그러나 아직 식당을 폐업한 것은 아니고, 잠시 휴업을 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수정을 창업해 운영해 온 주인 신수정(여ㆍ53) 씨는 요즘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번꼴로 식당을 방문한다고 한다.
수정 바로 옆집 한정식집 ‘대유’ 관계자는 “휴업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간판마저 철거해버린 이유는 모르겠다”며 “최근까지 신수정 씨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식당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2일 손님이 붐비기 시작하는 오후 6시 수정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닫힌 수정 출입구 앞에는 우편물 하나가 덜렁 남아 있었고, 아직 폐쇄되지 않은 수정 홈페이지(http://www.e-sujung.com)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는 한 언론사 전화번호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었다. 이 언론사로 전화를 걸어보니 “수정은 운영 안한다, 신문사다”며 이런 전화를 자주 받은 듯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이에 대해 수정을 종종 이용했던 한 전직 언론인은 “잠시 쉬었다가 새로 오픈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어쨌든 국민의 정부 시절 최고 호황을 누렸던 이 집의 폐쇄는 정치적 거두를 중심으로 한 보스정치 구조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60년대부터 즐겨 찾았던 한정식집 장원이 현재 종로구 계동에서 대중적인 한정식집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들이 하나둘 현역에서 물러나며 그들 또는 그 계파와 함께했던 한정식집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수정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찾는 사람이 없자 급격한 쇠퇴를 맞았다. 자구책으로 홈페이지(http://www.e-sujung.com)를 오픈하고 대중화 노력을 기울였으나 변신에 실패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로 찾았던 종로 효자동의 삼계탕집 토속촌, 여의도의 부산복집, 마포의 대교집 등은 일반 대중음식점이어서 상대적으로 세월의 부침을 타지 않는 편이다. DJ가 생전 즐겨 찾았던 음식점 중 ‘신안촌’ 역시 대중음식점으로 부침이 없다.
수정은 우리나라 고급 한정식집의 원조격인 장원에서 분가해 나온 한정식집이다. 장원을 운영한 주정순 씨가 지난해 4월 향년 86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전 종업원들에게 분가해 준 한정식집은 현재 두마, 미당, 늘만나, 목련, 수정 등 10여개에 이른다.
장원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팔렸고, 주 씨는 향원을 새로 열었다가, 그 자리는 현재 예조로 운영되고 있다. 주 씨의 딸은 장원이라는 이름으로 계동에 한정식집을 내 운영 중이다.
예조의 한 종업원은 “옛날 장원이 현재 예조”라며 “그러나 장원이라는 이름은 계동으로 갔다”고 했다.
<김수한 기자 @soohank2>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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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듯 간판이 철거된 채 문이 닫혀 있는 한정식집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