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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속 출생 비밀은 필요악?
‘반짝반짝 빛나는’은 산부인과의 실수로 28년간 뒤바뀐 인생을 살게 된 두 여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황금란(이유리)은 가난한 부모 탓에 힘든 삶을 견뎌왔고 한정원(김현주)은 부자 부모 덕에 상위 10%의 삶을 살아왔다.

부모가 바뀌었음을 확인한 금란이 부자 친부모 집으로 들어가면서 정원과 갈등을 빚고 있다. 착한 딸, 착한 며느리 역할만을 해오던 이유리가 점점 야누스 같은 악녀가 돼가고 있는 게 시청 포인트다.

이유리가 김현주에게 “내가 주인이고 네가 손님이야. 네가 날 양해하는 게 아니라 내가 널 양해해 주는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고 말한 후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칠 때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웃어라 동해야’도 130회가 진행되는 동안 핏줄찾기에 매달렸다. 동해(지창욱)가 친아버지 제임스를 찾고 나니, 동해 엄마 안나레이커(도지원)도 친부모를 찾았다. 힘들어도 착하게 살면 재벌회장 부모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요즘 드라마를 보면 가족찾기가 한창이다. 뒤바뀐 형제와 부모를 찾는 줄거리가 단골손님이며 이것으로 갈등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원래 출생의 비밀은 재벌가와 함께 한국 드라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2대 구성요소였다.

하지만 요즘 핏줄 캐기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도 자주 행해진다.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는 시절 이야기인 ‘짝패’에는 목뒤에 난 점으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짝패’와 ‘욕망의 불꽃’ ‘몽땅 내사랑’ ‘마이 프린세스’ ’폭풍의 연인‘ ‘가시나무새’ ‘신기생뎐’ 등 최근 드라마들 대다수가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를 끌고가는 뇌관으로 삼고 있다.

운명이 엇갈리는 출생의 비밀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큰 무기다. 막판 반전용으로도 그만이다.




잘 키운 아들이 실제로는 다른 집 자식이더라, 사랑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매 사이더라 등의 상황은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기에 매우 좋다. 이 사실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알게 될 때마다 한 번씩 놀라게 된다. ‘웃어라 동해야’는 이 상황을 이어나가며 갈등과 자극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질질 늘렸다.

출생의 비밀은 인생 역전을 강조하는 기제로도 쓰이고 있다. 한순간에 극과 극의 인생으로 변하는 ‘로또 인생’을 그린다는 말이다. 조그만 빵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알고 보니 재벌집 아들이라는 사실은 ‘운명론’과 ‘결과주의’를 반영한다. 현실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이런 운명론적 판타지에 기대게 된다. 이 때문인지 과정을 중시하는 성장드라마는 많이 약화된 상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출생의 비밀 이야기는 등장한다. 가족주위와 혈연주의가 유난히 강한 우리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핏줄 외에는 믿을 사람이 없는 사회일수록 혈연에 집착하게 마련이어서 출생의 비밀만큼 호기심을 당기는 소재는 없다.

하지만 엇갈린 혈연관계가 드라마를 자극적으로 만들어 소위 ‘막장화’에 한몫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상황 변화의 낙차만 크게 해 자극적으로 만들어 시청률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은 자극의 역치만 키울 뿐이다.

내성이 생기는 시청자를 자극하려면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엇갈린 혈연관계가 극을 풀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장치지만 그것이 인공조미료에 그쳐서는 안된다. 조미료를 많이 쓴 음식을 자주 먹은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다들 잘 알고 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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