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김광열,‘나도 모르는 세계로 떠나는 외로운 여행’
내게 있어서 자화상은 나 자신의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매일 살아가며 겪거나 느끼는 인간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내 모습은 남녀, 피부색, 인종의 차별 없이 나타난다. 때론 양초, 오렌지 같은 물체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는 여러 개인이 모여서 이뤄진다. 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연결돼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문화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게 사회이다. 예술가도 사회 속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예술을 통해 나눈다.
나의 자화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조그만 거울과 같은 것이다.

이전까지의 작업에서는 인물, 물체 등을 특정한 배경(풍경) 속에 배치시켜 어떤 감정들을 이끌어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작업의 스타일을 바꿨다. 그동안 해오던 서술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동시에, 나 자신의 현실, 나와 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 거기서 생기는 갈등, 감정을 넘어서 더 깊고 순수한 내면의 세계로 가고 싶어 새로운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광열의 자화상 ‘갇혀있는 사람의 기도’. 뒤편의 성화(聖畵)는 프라 안제리코의 ‘최후 심판의 날’(부분)을 모사한 것으로, 왼편엔 천국으로 향할 선인들이, 오른편엔 악인들이 모여 있다. 바로 그 중간 지점에 붉은 팬지를 들고 서있는 사람이 작가 자신이다.
내 그림 속 분홍색은 밸런타인데이에 사람들이 하트가 그려진 카드와 초콜릿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런 광고들을 보면서 시작됐다. 달콤한 행복을 상상하며, 물이 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그려보는 마음으로 그렸다.

그 후의 작업은 핑크 픽처이다. 벽이나 테이블에 낙서를 한 뒤 지우고, 또 그리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사실 그림을 그릴 때 실수를 한다거나 마음에 안들게 그려졌을 때가 많은데 이를 지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이용하려 했다. 이 작업에는 여러 이미지가 마치 눈을 감고 명상할 때나, 지난 날들을 떠올릴 때처럼 서로 겹쳐져 나온다. 이를 통해 순수한, 직관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많이 발견하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부드러운 선과 날카로운 선, 편안한 구도와 불안한 구도, 어질러짐과 정돈됨, 순진함과 세련됨, 조심해서 그린 선과 아무렇게나 그은 선, 실수한 자국, 지운 자국 등 서로 대조되는 요소들이 모여 어떤 장소,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서로 다른 색채와 실수, 우연, 계획된 의도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미(美)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내게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영혼(정신)을 위한 연습, 즉 공부인 동시에 더 깊은 내면의 세계, 나 자신도 미쳐 모르는,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로 가는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글, 그림=김광열(화가)>

‘I Imagine’
▶재미(在美)작가 김광열(49)은 중앙대에서 중국어와 회화(대학원)를 전공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드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의 작업은 대부분 자아상(自我像)으로, 쉽게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퀴어적 성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독특한 감성을 드러낸 그림들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고통스럽고도 절실한 질문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미국에서 게이문화를 이론적으로 접근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한 작가는 요즘 한결 밝고 자유로운 그림으로 선회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물체, 또는 물성을 흥미롭게 표현한 근작들은 고통과 분노 대신, 순수한 미적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차 있다. ‘Black,White & Pink’라는 타이틀로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작품전(~5월 8일)을 열고 있다.

‘무제’
<사진= 김광열의 자화상 ‘갇혀있는 사람의 기도’. 뒤편의 성화(聖畵)는 프라 안제리코의 ‘최후 심판의 날’(부분)을 모사한 것으로, 왼편엔 천국으로 향할 선인들이, 오른편엔 악인들이 모여 있다. 바로 그 중간 지점에 붉은 팬지를 들고 서있는 사람이 작가 자신이다. 아래는 김광열의 신작 ‘I Imagine’. ‘무제’ .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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