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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자는 ‘부관참시’가 두렵다?
198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대통령, 공산당서기장, 국가평의회 의장, 군 최고통수권자, 국방위원회 위원장, 공산당 이념위원회 위원장, 공산주의 통일전선 위원장, 공산주의 사회개발최고회의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인물이 군사법정 뒤뜰에 섰다. 그는 ‘반역자들에게 죽음을, 역사가 우리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고 외쳤다. 부인은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도망쳐 다녔다. 그러나 그들에게 30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비밀경찰을 동원, 6만명의 시민을 처형하는 등 루마니아를 24년간 철권통치해 온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최후는 크리스마스와 비교돼 더욱 비참했다. ‘역사가 복수를 해줄 것’이라고 외쳤지만 신원 확인을 위해 죽은 뒤에 무덤이 파헤쳐지는 걸로 독재자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마무리됐다.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서방연합국의 공습을 받고 있는 현존 최장 집권자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도 겉으론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벙커 속에서 차우셰스쿠의 최후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으로 철옹성 같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독재자들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23년간 튀니지를 통치해온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집트를 30년간 철권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실각했고, 알레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도 33년간 통치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차우셰스쿠처럼 아직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있지 않다. 그러나 벤 알리처럼 망명한 경우가 아니면 그들의 최후는 다음 정권에 달려 있다.

독재자들의 최후는 비참한 경우가 많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2003년 고향인 티그리트의 토굴에서 미군에 생포된 뒤 3년 만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은 1945년 4월 30일 소련군 포탄이 자신이 은신해 있던 벙커 입구에 떨어지는 순간, 애인 에바 브라운과 간단한 결혼식을 올린 뒤 권총으로 동반자살했다. 히틀러의 절친이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총리는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시신이 거꾸로 매달렸다.

반면 아이티의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는 최근 귀국해 체포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남 부럽지 않은 망명생활을 즐겼다. 23년간 튀니지를 통치한 벤 알리 대통령은 ‘재스민 혁명’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쫓겨났지만 금괴를 들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사의 평가는 달라=독재자에 대한 사후평가가 후한 경우는 드물다. 한국의 경우 2명의 독재자도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ㆍ19혁명으로 하와이로 쫓겨난 뒤 현지에서 사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역사는 비참한 최후보다 사후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궁정동의 최후’보다 ‘한강의 기적’이 부각되면서 선호조사에서 대부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논란이 있지만 자유시장체제를 도입한 ‘국부(國父)’로 재조명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의 오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가장 퇴행적인 독재 ‘세습’, 북한 주목=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퇴행적인 경우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독재자가 된 경우다. 비참한 최후도 세습 때문인 경우가 많다. 리비아 이집트도 부자세습이 시민혁명의 원인 중 하나였다.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역시 아버지였던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쿠데타 성공 이후 29년간 권력을 갖고 있던 아버지가 2000년 사망한 뒤 아들 바샤르는 국민투표에서 97.2% 찬성으로 대통령이 됐다. 2007년에도 97.6% 찬성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쿠바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전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과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 모두 바티스타 친미 군사정권을 몰아낸 혁명지도자였다. 동생 라울은 형 피델이 집권한 49년 동안 국방장관 등을 거치며 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형 피델이 2008년 물러난 뒤 자리를 이어받은 동생 라울 의장은 현재 경제개혁조치를 연달아 발표하는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라울 의장은 지금도 국가평의회 회의장에 형의 자리를 비워놓고 자기는 두 번째 자리에 앉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봉의 경우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들 알리 벤 봉고온딤바는 41.7%의 득표로 대통령 자리를 이어받았다. 장기집권 중인 독재자 가운데 세습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비참한 독재자의 최후의 전형인 차우셰스쿠의 롤모델은 김일성이었다. 차우셰스쿠는 북한의 주체사상에 감명을 받았고,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을 본떠 부쿠레슈티에 인민궁전을 짓기도 했다. 그러나 두 독재자의 최후는 달랐다. 김일성은 핵문제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지면서 남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찾던 1994년 7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적어도 북한에서는 ‘어버이 수령’이다. 북한은 62년 부자세습에 이어 3대세습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튀니지에서 발원한 혁명의 기운이 서진(西進)을 거듭하고 있어 북한의 독재체제의 운명도,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뒤집히는 것도 시간문제란 전망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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