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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친해지며 강해지는 멤버들…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의 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구성원은 게스트나 패널, MC라 부르지 않고 멤버로 불린다. 토크 버라이어티는 MC와 게스트로 구성된다. 멤버와 게스트의 차이는 친해지느냐 안 친해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멤버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친해진다. 게스트는 아무리 오랫동안 방송해도 친해지기보다는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멤버들이 친해지면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이들의 팬덤 또한 무서워진다. 어느 정도 감정 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멤버 개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팬들의 성향이 나뉘는 현상은 마치 아이돌 가수와 흡사하다.

팬덤에 의해 리얼 버라이어티는 과잉 소비된다. 프로그램과 멤버에 대한 관심도 도를 넘는 경우가 생긴다. 애정이 과했기에 (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실망의 조짐이 나타나면 미움이 생긴다. ‘1박2일’<사진>에서 이승기의 하차설이 나오자 게시판에는 “승기가 그럴 수가~”와 같은 글들이 올라왔다. 이승기는 제작진에 1년 전부터 하차 의사를 피력해 본업인 가수와 연기 활동의 어려움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정서가 형성되는 건 ‘과잉’이고 ‘무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한도전’이 뉴질랜드에서 서로에 대한 인상을 솔직하게 밝힌 롤링페이퍼 편을 방송한 이후 구심력이 급속도로 강화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로 친해지면 캐릭터의 힘도 강해져 성장하게 된다. ‘무한도전’의 의좋은 형제나 의 상한 형제 편은 형식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멤버 간의 관계가 충분히 형성돼 있어 그만큼 흡인력과 재미가 생긴다.

이승기도 ‘1박2일’ 멤버들과 친해진 이상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 것이다. 이승기가 토크 버라이어티 ‘강심장’에서 하차하는 문제를 가지고는 ‘1박2일’만큼 시끄럽지가 않았던 것도 이를 방증하는 현상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멤버들이 한번 친해지면 관계의 힘이 달라진다. 가령, 멤버들이 힘들게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올라 서로 포옹하는 장면은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시큰해진다. 토크 버라이어티는 아무리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사이라도 ‘~씨’나 ‘선배님’이라고 부르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멤버들은 모두 ‘형’ ‘동생’ ‘아우’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동성끼리 하는 남성 버라이어티가 잘된다. ‘1박2일’을 연출했던 이명한 PD는 “남자끼리 있어야 이야기가 나오지 여성과 섞이면 멜로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도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남녀를 섞으면 얻는 건 러브라인 하나다. 잃는 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PD가 ‘장미의 전쟁’ ‘여걸6’ 등을 연출하며 경험으로 터득한 것들이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다분히 한국적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리얼리티 쇼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리얼리티 쇼는 일반인들이 출연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심하면 방송에서 ‘욕’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럴 수가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네가 잘되길 바라”,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다. 구미의 리얼리티 쇼가 일반인 출연자의 사생활을 보면서 허구적 동일시를 느끼도록 유도한다면,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은 연예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보여주는 캐릭터 쇼 형태를 띠며 결국 공감과 감동으로 몰고간다. 그래서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 제작진은 웃음 추구에서 스토리 추구형으로 점점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이렇게 한국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따스하고 감동을 주고 공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승기가 군입대까지 ‘1박2일’을 하도록 만든 데에는 이런 요인들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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