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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라면 사먹지 하는 생각…농업이 흔들리면 근간 흔들릴 수밖에...”
이정희 한국낙농육우협회 위원장의 축산사랑 그리고...

“다 비슷해 보이지만 목장을 해보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소들을 하나하나 다 구별할 수 있어요. 소들은 체취로 우리를 알고, 우리도 다 알죠. 눈빛만 봐도 기분이 좋다는 거 나쁘다는 것 다 알아요. 그래서 농가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소를 묻은(살처분한) 사람들도 가슴에 묻어요. 아는 목장주가 소를 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하늘이 내려앉았습니다.”

우유 생산량 감소가 발등의 불이지만 이정희(56) 한국낙농육우협회 여성분과위원장은 구제역 사태부터 입을 뗀다. 화성에서 신하늘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위원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이 위원장은 목장을 떠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은 채 갇혀 있었다. 명절도 없었다. 기일도 못 챙기고 중요한 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만큼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목장을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설에 음식을 해서 마을 입구에서 음식을 전하고 자식들이 찾아가는 참담한 생이별을 했다. 이런 격리 아닌 격리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평소보다 소독과 목장 관리에 힘을 쏟았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봤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기회가 되더라고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삼국지 등을 봤죠.”

특히 ‘그들이~’는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에서의 낙농업 성공과 발칸반도의 낙농업 실패에 대한 비교(15장) 부분이 시선을 끌었다. 전자는 정부의 도움으로 산학협력단체를 만들어 연구개발, 마케팅을 공동 추진해 성공했고, 후자는 상당한 금액이 들어갔지만 각자 일을 추진한 탓에 실패했다. 지금 우리 낙농업이 갈 수 있는 두가지 길이 제시돼 있는 셈이다.

그는 좀 엉뚱하게도 삼국지 얘기도 꺼냈다. “등애 장군이 성도를 점령하러 700리 길을 넘어가요. 성도를 앞두고 절벽이 나타나는데 물러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거예요. 지금 외출도 못하고 낙농업 앞날은 어렵고 한데 그 장면이 마치 우리 처지 같더라고요. 이때 등애 장군이 절벽을 굴러 내려갑니다. 다른 군사들도 같이 떨어지고요. 이때 병사들의 절반이 죽고 말죠. 그래도 성도 점령에는 성공합니다. 우리 낙농가들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만큼 힘들고 희망을 붙들려는 안간힘이다.

지난 30년간 낙농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 위원장은 우유에 대한 짧은 기사를 보고 30년 전 송아지 한 마리를 200만원에 사서 목장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당시 우유가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부자들이 소에 투자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정보도 없고 낙농업을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첫 새끼가 하루만에 죽는 등 곡절도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조직한 것이 여성 낙농인 모임이었다. 낙농협회 안에 여성분과위원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여성들도 소를 같이 키우는 경우가 많은 만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공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여성이 이제는 보조자가 아니라 동등한 경영자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이 위원장은 당시 여성분과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6개월 동안 전화를 붙들고 살았다. 남자 사장들 중에 반대한 사람도 많았다. 결국 2001년 11월 280명으로 총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농업 관련 모임 중 단일 업종으로 여성모임이 있는 것은 낙농업이 유일하다.

여성분과위원회는 매년 여성 낙농인 심포지엄을 열고, 우유 홍보 업무를 주로 한다. 필요한 경우 각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석하고 전문 낙농인 과정을 열기도 한다. 우유요리 경연대회를 열어 우유 요구르트, 우유 팥빙수 등 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우유를 홍보하기 위해 밀크 스쿨, 방문 목장들을 운영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2004년에는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제가 가입했던 음악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들을 1박2일로 초대한 적이 있어요. 재미있게도 그러고나니 카페명은 그대로인데 카페 활동은 우유 관련 카페로 변했더라고요. 저희 목장에서 드라마를 찍은 일도 있어요.”

이 위원장은 구제역 사태 수습을 위해 ‘젖소 품앗이’를 제안하기도 했다. “과거 구제역이 일어났을 때 저희 목장에서 살처분을 했던 다른 목장으로 우량 젖소 한 마리를 준 적이 있어요. 우리에게는 한 마리지만 소를 묻은 목장에서는 천군만마가 되죠. 이번에는 그런 방식을 제안해보려 해요. 구제역 피해가 없는 각 목장에서 한두 마리씩 구제역이 생긴 목장으로 보내주는 거예요. 공짜로 주기 어려우면 싼 가격으로 주거나 대출 형식으로 줘도 되죠.”

그의 마지막 호소는 새겨들을 만하다.

“농업은 국가의 식량 창고예요. 생명은 농업에 달려 있어요. 모자라면 사먹지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에요. 더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봐야죠.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농업은 장기적으로 의료비가 덜 들어가고 복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곡물 상황이 심각한데 30%가 넘는 축산 분야를 그냥 두면 안 됩니다.”

<이상화 기자 @sanghwa9989> sh9989@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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