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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채 노점상 “얼어서 버리는 게 더 많아”…고물가 공포
▶정육 유통업자는

소·돼지 값뛰어 매출 반토막

냉장고 채울 물건마저 없어


▶도·소매 납품업자는

물가 잡는다더니 죄다 올라

거래처끼리 인정도 사라져


▶야채 파는 노점상은

옷 껴입어도 팔다리 욱신욱신

얼어서 버리는 게 더 많아


▶과일가게 상인은

선물세트 찾는 손님 없어

추우니 다 대형마트 간거지


영하 10도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몰아치던 지난 26일 오후 7시. 퇴근시간이라 한창 사람이 몰릴 만도 했지만, 서울 남서부 지역 대표 재래시장인 영등포전통시장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한 느낌까지 들었다.

설을 코앞에 뒀지만 점포 대부분이 문을 닫아 시장 안이 어둑어둑했기 때문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역시 한두 명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일직선으로 들어선 시장 안은 찬바람이 관통하며 더욱 살을 에는 느낌이었다. 

가게 셔터를 내리던 ‘ㅅ 건어물’ 서명석(44) 사장은 “설 대목은 무슨…. 명절 대목 잊은 지 오래됐다”면서 “장사가 너무 안돼 작년 설 때 오후 9시까지 열던 걸 요즘엔 오후 7시에 가게 문 닫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마트에 치여, 구제역에 치여, 한파에 치여 재래시장은 정말 죽을 판”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웠다.

마침 잡곡 노점에서 한참을 흥정하다 발길을 돌리던 주부 신정자(여ㆍ54ㆍ당산동) 씨는 “추워도 싸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왔는데 너무 비싸 아직 산 게 없다”면서 빈 장바구니를 보여줬다. 그는 “안 오른 게 없는 것 같다”면서 “배추도 한 포기에 5000원이 넘고, 팥이나 녹두 등도 2~3배 이상 올랐다”면서 “설 때 제사는 어떻게 지내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경기에, 한파와 구제역까지 겹치면서 재래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산물 가게나 과일상가, 고깃집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재료를 받아 장사하는 삼겹살집, 중국집까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래저래 설을 앞두고 서민들의 주름만 깊어지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20m쯤 더 갔을까. 물건을 정리하던 정육유통업자 권상찬(47) 씨는 “팔린 것도 없는데 냉장고에 넣을 물건도 없네…”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구제역 때문에 물량은 3분의 1로 줄었는데, 소ㆍ돼지 가격은 배로 오르면서 매출은 반 토막 났다”면서 진짜 구제역 피해자는 중소 소ㆍ돼지고기 유통업자라고 항변했다. 그는 “사육 농가는 정부에서 피해액을 지원해준다지만, 우린 어디도 도와주는 곳이 없다. 요즘은 은행 빚내서 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공식품 도ㆍ소매 납품가게를 운영하는 ‘정화유통’의 이남연(48) 사장은 “물가 잡는다더니 안 오른 게 없다”며 강하게 정부의 물가 정책을 비판했다. 이 씨는 기자에게 직접 거래명세서를 보여주며 “도매상에서 납품받는 2만원짜리 부탄가스(27개 1박스)는 2만3000원으로 뛰었고, 설탕, 된장, 고추장 등도 20% 가까이 올랐다”면서 “오른 게 많고 오름 폭도 크다 보니 예전엔 거래처끼리 가격 올리기 전에 유예 기간을 줬었는데 이젠 턱도 없다. 바로 올려 버린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매출 떨어지고 이탈하는 거래처 때문에 손해가 크지만 명절 거래처 선물은 돌려야 한다”면서 “올해는 예년의 4만~5만원짜리 4단 사과 선물세트 대신 1만~2만원대 생활용품 선물세트로 인사치레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점포가 있는 상인은 낫다. 노점상인들은 더욱 힘들어 보였다.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유영남(여ㆍ78) 씨는 “오늘 10만원 정도는 버셨냐”고 하자 손사래를 치며 “채 4만원도 못 팔았다. 설날인데 손자들 세뱃돈도 못 줄 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몇 겹을 껴입어도 너무 추워 팔다리가 쑤신다. 장사도 안 되는데 날씨까지 추워 파는 것보다 얼어서 버리는 야채가 더 많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나마 설 대목 분위기가 느껴질 만한 과일가게도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시장 초입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손모(67ㆍ여) 씨는 “추워서 다 인근 대형 마트로 갔는지, 아직 선물세트 찾는 손님이 많지 않다”며 한쪽에 쌓여 있는 사과, 배 선물세트를 보며 한숨지었다. 손 씨는 “인근에 타임스퀘어가 들어온 뒤로 교통체증이 심해져 시장 오는 사람은 더 줄었다”면서 “말 그대로 재래시장은 ‘죽어라 죽어라’ 하는 상황”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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