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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설과 메타포
법적으로나 의학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설(毒舌)이 폭력을 불러온다는 건 사실에 가까운 추론이다. 본래 독설이란 게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다.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독설에도 단계와 종류가 있다.

가장 위험하고 극단적인 게 살상형이다. 질도 낮다. 밑도 끝도 없이 “죽이자”고 선동한다. “후퇴하지 말고 (총을) 재장전하라” “M16 자동소총으로 (기퍼즈를) 쏘라” 뭐 이런 식이다. 연초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발생한 브리얼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 피격사건을 계기로 미국 정치권에선 이 같은 살상형 독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살상형 독설은 심심찮게 나온다. 천정배 의원이 “이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악의 무리, 탐욕의 무리를 반드시 소탕하자”는 독설로 그동안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게 바로 얼마 전이다.

상대에 따라 잘 해결된 사례도 있긴 하다. 영국의 첫 여성 의원 에스더는 “내가 처칠의 아내라면 커피에 독약을 타겠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처칠은 “내가 에스더의 남편이라면 그 커피를 즉시 마셔버리겠다”고 했다. ‘너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에 ‘나도 너랑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받아친 셈이다. 처칠의 유머감각은 유명하지만 그중에 백미 아닌가 싶다.

위험하긴 비하형도 마찬가지다. 곤충이나 동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식이다. 국내의 가장 좋은 예는 역시 독설로 한가닥 했던 유시민 전 장관이다. 그는 “나는 한나라당 박멸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말로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박멸이란 한 단어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모두 해충으로 만들었으니 강도로는 최고급이다. 결국 그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도 ‘맞는 말을 싸가지 없게 한다’는 소릴 들어야 했다. 전혀 그럴 것같이 보이지 않는 진보신당도 유시민 후보에겐 ‘인터넷 앵벌이’라는 고강도로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반면 독설 같지 않은 ‘나도 모르게’형도 있다. 전혀 독설용 단어로 보이지 않는데 아픈 말이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 전 대표의 “참 나쁜 대통령”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나 개헌추진론을 듣고 나와 한 말이다. 그의 이 말은 2008년 한나라당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자 “참 나쁜 사람들”로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물론 박근혜이기에 가능한 말이긴 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물에 물 탄 듯 주목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그동안 사용해온 단어가 독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독설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역시 메타포(metaphor)다. 은유와 비유로 의견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유머가 가미되면 더욱 좋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전달과 공감 효과는 오히려 크다. 얼마 전 MBC ‘주말 뉴스데스크’에서 최일구 앵커는 “물가가 스카이콩콩도 아닌데 너무 뛰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당국으로선 웃음 지으면서 물가불안에 대한 여론을 의식했음에 틀림없다.

천안함 사태로 온 나라가 뒤끓었을 때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않고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 두고 해외의 한 언론은 “이마에 총구멍이 난 시체를 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CSI(과학수사대) 요원과 같다”고 표현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임명됐을 때도 해외 언론은 “새장에 비둘기가 들어왔다”고 했다. 파이터로 불리던 이성태 전임 총재에 빗댄 말이다. 직접 들이대지 않고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기술이 메타포다.

독설이건 메타포건 조심해야 할 사람들은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늘 다수 대중을 향해 얘기하는 직업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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