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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우고 또 비워낸…단순함의 경지…
‘한국의 폴 클레’ 장욱진 20주기 기념전

첫 일반공개 ‘소’등

독창적 작품 70점

내달 27일까지

갤러리현대서


안빈낙도 삶 조명

국·영문 화집도 출간



일평생 ‘심플 심플’을 외치며 단순 명료하게 살다간 화가 장욱진(1917~1990). 그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와 동시대를 살며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끌었던 작가이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다. 또 주로 기인으로 부각되곤 했다. 그러나 장욱진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안빈낙도의 삶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 회화로 표출해낸 소중한 작가다.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장욱진 화백의 20주기를 맞아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사장 이순경)과 갤러리현대(대표 도형태)가 ‘20주기 기념-장욱진 전’을 오는 14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다. 2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장 화백의 유화 60여점과 먹그림 10여점 등 총 70점이 나온다. 

그 중 첫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길 위의 자화상’. 검은 연미복 차림의 깡마른 신사가 황금빛 들판을 유유자적 걷는 이 그림은 장욱진의 1951년 작품으로, 작가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초미니 그림이지만 그 속엔 칼날 같은 예리함과 유연한 풍류가 살아숨쉰다. 

1957년 작인 ‘나무와 새’도 장욱진의 초기 대표작이다.  나무, 새, 아이, 집이 모두 등장하지만 자칫 복잡한 구도를 똑 떨어지게 단순화해 기하학적으로 아름답게 정돈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쯤 되면 ‘서양미술 거장’ 폴 클레가 부럽지 않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하는 단골말 가운데 한 마디지만 또 한 번 큰 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다.’”(장욱진의 말 중에서). 그의 말처럼 장욱진의 그림에는 일상의 친근한 이미지들이 맑고 정겹게 표현돼 진실했던 작가정신을 살필 수 있다. 작은 캔버스 안에 완벽한 화면을 구축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촘촘히 직조한 것. 전시에는 장욱진의 1940년대 초기 작부터 1990년 생의 마지막 작품까지 망라돼 그 같은 면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장욱진의 대표작 ‘나무와 새’. 작은 공간을 자기식으로 쪼개고 꾸민 엄정함이 있지만 동시에 어린아이 그림처럼 따뜻하다.

붉은 바탕에 소와 사람을 그려넣은 1953년 작 ‘소’는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며,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5주기 전시 이후 처음 나오는 작품도 여럿이다. 모두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주옥 같은 작품들이다.

충남 연기에서 태어난 장욱진은 경복고 재학 당시 일본인 교사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다 퇴학당했다. 일제시대 때는 동경 제국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해방 후 박물관에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1954~60년에는 서울대 교수로 봉직했다. 그러나 이후 한적한 시골(덕소, 수안보, 신갈 등지)에 조촐한 화실을 꾸미고 그림에 전념했다.

특히 그는 그림과 주도(酒道) 사이를 오가며 ‘자유로운 무애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유화 외에 먹그림, 도화, 판화를 폭넓게 시도하며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새롭게 담금질하기도 했다.

정영목 서울대 교수는 “장욱진은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시킨, 새로운 조형언어의 창조자다. 그의 작품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심플’하지 않다. 조금도 용서될 수 없는 예리함과 준엄함이 있다. 하지만 겉으론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 만큼 평이한 체를 만들어나갔다. 양극을 극적으로 관통하며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화풍을 만든 화가였다”고 평했다.

이번 20주기전을 계기로 국영문 혼용 대형화집(마로니에 북스)도 출간됐다. 또 장욱진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경기도 양주에 설립된다. 양주는 작가의 작업실이 있던 곳.

큰딸 장경수(경운박물관 부관장) 씨는 “젊은 세대들이 아버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버지의 작은 그림들을 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 왔다 가면 즐거워지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거창하고 요란한 공간보다는 자그마한 공간,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장욱진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연보, 사진도 함께 나온다. 관람료 성인 3000원. (02)2287-3500

이영란 기자/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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