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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파멸의 시작 (29)
글 채희문/그림 유현숙


요즘 스마트폰 등등의 신식 핸드폰을 소지하고 있는 남자들은 하여간 조심부터 하고 볼 일이다. 잘 쓰면 약이 될지 모르겠으나 자칫하다간 독이 될 수 있으니, 신식 핸드폰을 소지할 바에는 더불어 앰플에 담긴 청산가리라도 소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청산가리 앰플이라도 깨물어야 깨끗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유민 회장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 터이니 그 구차함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까.

“오! 그라스 강. 네 젖가슴은 어찌 이리도 매끄럽고 탄력이 넘칠까?”

“간지럽다니까요, 회장님.”

“게다가 맛을 보면 달콤하기도 하구나. 꿀물이 흘러.”

“아흐, 그만! 회장님. 미치겠어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농밀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미쳐가는 사람은 신희영이었다. 귀에 붙이고 있는 작은 전화기는 기능으로 보아 도청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내용면으로 보면 어김없는 섹스 바이블의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섹스 상대역을 맡은 주인공은 목소리로 보아 신데렐라보다도 더 어여쁘고 가냘픈 미녀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술에 취해 떡이 된 남편 유민 회장이 저렇게 숨넘어가도록 안달을 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그라스 강! 이제 더 이상 못 참겠다. 우리 한번 통해보자.”

“아흐! 회장님, 침대로… 침대로 가요.”

여기까지 인내심을 발휘하여 듣고 있던 신희영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어느새 안색이 창백해지고 머릿속에서는 지푸라기가 버석거리고 있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가 싶더니 입 안에 침이 말라붙을 지경이었다. 곧이어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순간, 한승우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모님, 출세가도가 열렸다고요?”

회사까지 뛰어서 왔는지 한승우는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하긴 막강한 재력을 지닌 사모님께서 출세가도를 닦아놓았다고 했으니, 그 말을 듣고 달려오지 않을 놈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한 군, 출세가도도 좋지만… 먼저 이 년 놈들 수작 좀 들어봐요. 세상에, 혀를 깨물고 뒤집어질 일이야.”

신희영은 한승우에게 전화기를 건네주고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그녀의 육중한 몸무게를 견디지 못한 의자가 뒤로 주르르 미끄러져 굴러갔다. 시커먼 가죽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의자, 여섯 가닥으로 갈라진 받침대에 도르래 식 바퀴가 달린 의자였다. 한승우는 그제야 자기가 들어선 곳이 유민 제련그룹의 회장실임을 깨달았다.

“아니, 이건… 음란전화 아닌가요? 누가 사모님께 이런 장난을 하는 거지요?”

“장난이 아니에요. 잘 들어봐요.”

“아, 아… 그렇군요. 회장님께서… 유리의 성이라는 술집에 가신 거로군요. 그곳에서 송유나라는 아가씨와… 사고를 치는 중이군요.”

“유리의 성? 송유나? 어떻게 알았어요? 그것들이 상호와 이름을 줄줄 읊어 대든가요?”

“여자가 회장님께 말했어요… 자기는 유리의 성에 근무하는 아가씨들 중에서 제일 예쁜 여자래요. 그런데 회장님께서는… 자꾸 강유리라는 아가씨를 찾는군요. 지금 아가씨가 짜증을 내고 있어요. 자기는 강유리가 아니라 송유나라고요. 송유나!”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뛰네. 그 년 놈들 지금 뭐해요?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냐고요.”

“지금… 막…, 아이고,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모님.”

결국 신희영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회장실은 웬만한 유치원 교실만큼이나 넓었지만 양탄자가 깔려있기 때문인지 그녀의 울음소리는 고요히 바닥으로 배어드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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