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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경화 폭주 日열도 강타한 ‘아렌트 신드롬’ 왜?…‘생각하지 않는 죄’ 반향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일본 열도에 유대계 여성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신드롬이 일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강행 등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폭주에 ‘생각하지 않은 죄’를 역설한 아렌트의 철학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일 “한나 아렌트의 저서와 그의 삶을 조명한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화 ‘한나 아렌트’를 보기 위한 행렬이 줄을 잇고 주말에는 서서보는 관객까지 늘었다.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부쩍 찾는 독자가 많아졌다. 1969년 일본에 첫 출간돼 연평균 300부 가량이 팔렸지만 지난 10개월사이에만 4800부를 더 찍었다. 

영화 ‘한나 아렌트’의 한 장면.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참으로 불행히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다른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훨씬 쉽다”고 썼다.

아렌트(1906~1975)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강제수용소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다.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고 쓴 보고서로, 1963년 출간 당시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인 아이히만을 극악 무도한 인간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대신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봤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대량학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스스로 생각을 포기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역설했다. 그는 “아이히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무능함’ 때문이었다”며 “사고와 성찰의 부족으로 생기는 판단의 무능성이 죄악을 부른다”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파시즘 광기 같은 집단성 속에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아렌트 신드롬이 일고 있는 것은 극으로 치닫는 우경화와 무관치 않다.

‘지금이야말로 아렌트 다시 읽기(나카마사 마사키 저)’를 출간한 일본 대형 출판사 고단샤(講談社) 담당자는 “집단적 자위권 등이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자세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3월 출간된 ‘한나 아렌트’의 저자 야노 쿠미코(矢野久美子) 페리스여학원대학 교수는 영화 ‘한나 아렌트’를 거론하면서 “지금 만연하고 있는 ‘무사고성(無思考性)’을 감지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야노 교수는 “영화 장면 중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으로 강해진다’며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생각하는 것을계속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아렌트는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인 사건과 결부시켜 감상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렌트가 지금, 여기 일본에서 살고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라는 질문에는 “토론을 다하지 않고 현실을 소홀이 여기는 것에 반대하며 경종을 울렸을 것”이라고 답했다.

야노 교수의 저서 ‘한나 아렌트’는 올들어 가장 인기있는 베스트셀러에 올라 철학서 중 이례적인 4쇄(3만4000부)를 찍었다.

/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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