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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1100억 들여 디지털 교육 한다더니…5년간 학점은행 부실 운영 181건에도 기관 제재 ‘0건’
평생교육 일환 ‘학점은행제’ 부실 운영 지적돼
5년간 181건 부실 운영 벌점에도 기관 제재 없어
수업과정 평가도 부실…1인당 108시간 수업 봐야
교육과정 만들어도 지지부진…5년간 신설 2개뿐
[123RF]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학점은행제를 부실하게 운영한 기관 181곳이 지난 5년간 벌점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제재를 받은 기관은 한 곳도 없는 등 사실상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교육부가 성인 디지털 교육을 강조하며 학점은행제 확대 등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학점은행 운영기관 벌점 181곳…기관 제재는 한 건도 없어
[자료=교육부·정성국 의원실]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20~2024년 10월 15일까지) 학점은행제를 운영하는 기관 181곳이 부실 운영으로 벌점을 받았으나, 기관 차원의 제재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점 누적에 따른 제재는 ‘기관’ 단위가 아닌 ‘학습과정’ 단위로 적용돼, 학습과정 평가인정만 2020년, 2023년 각각 1건씩 취소된 데 그쳤다.

연도별로 보면 학점은행제를 운영하는 기관 ▷2020년 45곳 ▷2021년 53곳 ▷2022년 46곳 ▷2023년 27곳 ▷2024년 10곳이 각각 벌점을 받았다. 학점은행제 벌점은 시험을 부정하게 운영하거나 수업시간을 무단으로 단축한 경우 등에 부과하며 66점 이상 누적되면 평가인정이 취소된다. 학점은행제 운영을 내실화하는 취지로 지난 2015년 도입된 제도다.

학점은행이란 학교가 아닌 곳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운영해 학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학위 취득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대학과 달리 입학금이나 등록금을 낼 필요가 없어 학습 문턱을 낮춘 데 의미가 있다.

교육부는 학점은행을 디지털 교육 수단의 하나로 강조했다. 앞서 교육부는 성인 디지털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하는 1100억원 예산 규모의 ‘인공지능·디지털(AID) 30+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학점은행제 AI 관련 전공을 신설하고, 교양과목을 개편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평가위원 1명이 108시간 수업 평가해야…“내용 심사 뒷전”

학점은행제 운영 기관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매년 늘어나는 학점은행 수업과정에 비해 평가위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성국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원격수업 학습과정은 총 3263개가 운영됐으나 올해 기준 평가위원은 264명에 불과했다.

학습과정 하나당 시간을 525분(75분*7주)로 상정하면 학습과정 3263개의 총 수업시간은 약 2만8551시간이다. 264명의 평가위원에 균등 배분한다면 1인당 약 108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대학 등 기관이 학점은행제 학습과정을 운영하려면 콘텐츠 개발을 50% 이상 완료하고 시설을 갖춘 뒤 국가평생교육진흥원(국평원)으로부터 평가인정을 받아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수업이 늘면서 평가 위원이 담당하는 학습과정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평가인정을 받은 원격 수업은 2019년 1437개에서 2023년 3263개로 2.2배가량 늘었다. 원격 수업에 출석 수업까지 포함한 총 학습과정은 같은 기간 4274개에서 6012개로 늘었다. 이와 관련 정성국 의원은 “내용에 대한 심사보다는 형식, 설비, 기준에 치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수업 신청부터 개강까지 3년 5개월…5년간 신설 2개뿐
3년 전 국평원은 재난 관련 수업 24개 신설 신청을 받고 심사를 거쳐 지난해 4월 교육과정을 고시했지만 현재 운영 중인 수업은 한 곳도 없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홈페이지 캡쳐]

사회 수요에 맞춘 수업이 개발되어도 실제 교육이 이뤄지기까지는 수년이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학점은행을 운영하고자 하는 기관이 국평원에 신청을 접수해도, 이를 일정 기간 내에 심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별도로 없는 탓이다. 심사가 끝나더라도 교육을 듣고자 하는 수요가 없으면 수업 자체가 열리지 않기도 한다. 교육부가 목표로 하는 학점은행제를 통한 디지털 수업이 교육 현장에서 언제 실제로 진행될지는 기약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국 의원실이 받은 ‘학점은행제 표준교육과정 과목 신설 접수 및 개강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신설된 과목은 단 2개에 불과했다. 잠수사에 심해잠수 요령을 교육하는 ‘표면공급공기잠수’ 관련 과목들이다. 해당 과목은 지난 2020년 4월 14일 국평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같은 해 11월 20일에야 국평원 심의가 완료됐다. 이 수업은 각 대학에서 지난해 9월 4일 개강했다. 수업과정 신청부터 개강까지 3년 5개월이 소요된 것이다.

교육과정 심사를 받았음에도 개강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수업들도 많다. 서경대·경운대·국가민방위재난안전교육원은 재난계획론, 재난관리리더십, 재난대응론 등 재난 관련 24개 과목 신설을 2021년 10월 15일 신청했다. 그러나 국평원은 1년 후인 2022년 12월 14일 심의를 완료하고, 이로부터 다시 4개월이 지난 2023년 4월 14일 국평원 홈페이지에 교육과정 등을 고시했다. 그러나 국평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해당 과목들 모두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성국 의원은 “현행 제도는 창의적인 커리큘럼을 신설하려 해도 촘촘한 규제에 막혀 인재 양성이 어려운 구조”라며 “시대변화를 반영한 양질의 교육이 학점은행제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낡은 규제는 혁파하고 실질적인 콘텐츠 품질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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