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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방산림청장 정 철 호

정철호 서부지방산림청장.

어느 순간 바람이 차졌다. 들판에선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갑작스런 날씨 변화에 놀란 나무들도 단풍 채비에 들어간다. 더위에 지친 이들은 문밖으로의 외출을 서두른다. 정말 걷기 좋은 때다. 가을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곳, 여기 ‘지리산둘레길’이 있다.

지리산,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올라 본 산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지리산은 남녘의 가장 큰 산으로 수많은 마을과 사람들을 품고 그들의 삶과 애환, 역사와 문화를 함께하는 ‘어머니의 산’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어머니를 찾아 위안을 얻으려는 발걸음인 것이다.

지리산둘레길은 산 정상을 향해 빠르게 오르는 걸음을 느리게 성찰할 수 있는 걸음으로 바꾸어 보자는 대안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시민단체와 산림청이 의기투합해 사단법인 숲길을 꾸렸고 본격적인 조사와 주민들을 설득해 곳곳의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2007년부터 5년간의 노력 끝에 3개 광역도 5개 시·군 120여 개 마을을 잇는 7백여 리의 둘레길을 완성한 것이다.

지리산둘레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21개 각 구간 앞에 숫자가 없다. 1구간도 없고 종점도 없다. 대신 ‘인월-금계’처럼 마을 이름만 앞세울 뿐이다. 또 지리산둘레길은 불편한 길이다. 무심코 걷다 경로를 이탈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포장길은 못내 부담스럽다. 화엄사, 실상사와 같은 유명한 절집이나 그 흔한 관광지는 아예 경로에서 빠져 있다. 이처럼 지리산둘레길은 자기방식만을 고집하며 우리를 맞고 있다.

지난 2021년 제1호 국가숲길로 지정된 지리산둘레길은 현재 사단법인 숲길에서 산림청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둘레길이 처음이라면 사단법인 숲길이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토요걷기’에 참여하면 된다. 안내자가 동행해 하루 15km 가량 걷는 프로그램으로, 다 걷고 나면 출발지까지 차량으로 이동시켜 준다. 더 오래 걷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매월 3박 4일 프로그램도 진행하며, 15일 걸리는 전 구간 종주프로그램도 1년에 두 번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리산둘레길’ 누리집을 보면 된다.

얼마 전, 둘레길을 종주하는 ‘평화순례단’ 일행과 동행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오전 걷기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오롯이 자기 걸음에 의지하며 나무와 풀,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이다. 생각에 집중하며 자기를 정화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다. 누구하나 그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 문득 이들이 궁금해 물으니 퇴직여행 오신 분, 귀촌하신 분, 전국 숲길을 섭렵하시는 분, 건강할 때 종주를 계획하셨다는 44년생 어르신 등등 다양하다. 왜 걷느냐고 물으려다 그만 두었다. 걷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례일 것 같았다.

청명한 가을날, 지리산둘레길에서 축제가 열린다. 아시아지역 7개 나라가 참여하는 ‘아시아트레일즈컨퍼런스’다. 10월 25일부터 3일간 전남 구례군 일원에서 진행되며 약 3000여 명이 참가한다. ‘길이 우리에게 준 것, 우리가 길에 줄 것’을 주제로 여러 나라의 숲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지리산둘레길도 함께 걷을 예정이다.

지금 지리산은 온통 풍년이다. 그리고 지리산둘레길이 있다.

kwonh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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