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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핑크뮬리·단풍이 손짓하는 천안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 어때? [함영훈의 멋·맛·쉼]
민간정원 1호 ‘화수목’에서 가을정취
순대국밥·횃불주로 입맛·분위기 잡아
아라리오에선 페르난데스·허스트 작품 감상
민간정원 1호 천안 아름다운정원 화수목
민간정원 1호 천안 아름다운정원 화수목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국제 흥타령춤축제에서 우리의 흥을 제대로 보여준 천안, 이제는 그 흥을 차분히 가라앉힐 때다. 전라도와 경상도, 서울을 잇는 삼남대로의 주요 길목이었던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곳인 만큼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곳도 많다.

특히 천안의 가을은 핑크뮬리, 단풍이 손짓하는 가을의 전경과 뜨끈한 국물로 유명한 병천아우내 순대 국밥, 세계적인 예술작품이 모인 미술관 등을 앞세워 조신한 손길을 내민다. 언제 가도 늘 새롭고, 참 즐겁다.

개울길·폭포·식물원…민간정원 1호에서 느끼는 가을 정취

화수목은 대한민국 민간정원 1호이다. 인공폭포와 주제별정원, 탐라식물원, 돌머루 개울길, 사파리 정원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정원의 이름인 ‘화수목’은, 화(花)는 결실을 맺기 전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을, 수(水)는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물을, 목(木)은 든든한 집처럼 견고하지만 따뜻한 우리의 터전을 뜻하는 나무를 의미한다. 자연 속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뜻밖에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정원’ 내에 있는 탐라식물원은 제주 자생 16종의 귤나무와 몇 백 년 된 동백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온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길이 100m, 높이 40m의 인공폭포는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이곳엔 제주 현무암의 돌 조각상과 아름다운 꽃들, 크고 작은 나무의 초록이 가득하다. 총 400여 종, 1만5000 그루의 나무와 꽃과 편안히 조우할 수 있다.

봄에 엄청난 상춘객을 맞았던 피나클랜드는 요즘 국화, 코스모스, 팜파스 등을 앞세워 또 다른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태조산 무장애나눔길
태조산 짚코스터

천안 동남구에 있는 태조산은 자연 경관 만큼이나 고려 태조 왕건의 이야기로 유명해진 곳다. 삼한의 재통일을 목전에 두고 번번이 견훤 세력에게 덜미를 잡히던 왕건은 고려 출범 6년 전인 930년 충남 일부 지역에서 얻은 승전을 발판삼아 태조산(421m, 고려 출범 후 붙여진 이름)에 머무르며 후백제를 따돌릴 만한 계책을 마련한다. 전열을 재정비한 왕건 군단은 이후 연전연승 하며 통일을 이룬다.

이제 그 숭고한 통일 성지는 장애인 노약자도 무난하게 갈 수 있는 태조산 무장애 나눔길로 탈바꿈했다.

숲 속에 마련된 데크 로드와 황토 포장길은 경사도 8% 이하의 산책로로 조성돼 휠체어 사용자, 어린이, 노약자 등 보행 약자들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숲 체험이 가능하다. 천안시는 2020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시민 누구나 자연을 느끼면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총 1.4㎞, 노폭 2m에 이르는 산책로 무장애나눔길을 만들었다. 가벼운 경사에 바닥도 평평해 어르신들의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했다.

이곳엔 S라인-스크류라인으로 역동성을 더한 짚코스터가 인기를 얻고 있다.

광덕사에 있는 400살 된 국내 첫 호두나무

태조산에서 가까운 광덕산(해방 699m)은 선덕여행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충남 최대 사원이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다시 지었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아직 남아 있으며, 종각 양식에 팔각 지붕 콘셉트를 적용해 이채롭다. 보물인 노사나불괘불탱은 조선시대 것으로, 주로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했고, 군데군데 구름을 그려 넣어 원색의 화려함과 채도 대비의 선명함을 함께 보여준다.

대웅전 입구에 있는 수령 400년의 호두나무는 국내 제 1호이자 최고령 나무다.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병천순대국밥
쌀쌀한 가을 날 그리운 그 이름, 순대국밥

요즘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니, 여행자에게 온기와 원기를 전해줄 국밥이 그리워진다. 순대국밥은 말만 들어도 몸이 따뜻해지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특히나 병천 아우내장터 오소리감투는 순대국밥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아우내장터는 3·1 만세운동의 진원지이고 오소리는 족제비과 동물이 아니라 돼지고기 내장을 말한다. 아우내장터 사람들은 ‘내가 적게 남기고 손님들에게 값싸면서도 푸짐하게 대접한다’는 뜻으로 오소리(吾少利)를 풀기도 한다.

병천(竝川)은 잣밭내와 치랏내라는 물길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아우내라는 우리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960년대 병천 인근에 돈육 가공 공장이 들어섰고, 이곳의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장날에만 순대국밥을 팔았는데, 입소문이 나자 1968년 아예 자리를 잡고 간판을 걸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인증한 병천순대 원조, ‘청화집’ 이야기다.

이후 ‘충남집’ ‘돼지네’ 등이 잇따라 생겨났고, 현재 아우내순대길 일대에 순대국밥 전문점만 20여 곳에 이른다. 냄새가 적은 작은창자에 양파, 대파, 양배주, 찹쌀, 선지 등을 넣어 만든다. 사골국물과 한약재국물을 넣어 맛은 물론, 건강까지 챙긴다.

장터 입구엔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무궁화꽃 옆에 우뚝 선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이 있다. 유관순 열사를 자기 고을에서 떠나보낸 서울 서대문(형무소)-마포(이화학당) 사람들로서는 더 정감이 간다.

아우내장터 옆 유관순열사 동상
우리가 폭파시킨 총독부 건물의 탑두껑

이곳은 점심 때 허기를 달래도 좋고, 저녁 때 뜨근하고 고소한 술국에 3·1독립운동을 상징하는 ‘병천아우내 횃불주’를 곁들여 술 한잔 해도 좋다. 횃불주는 막걸리나 맥주병을 거꾸로 들고 위로 올라간 병바닥 위에 술잔을 얹은 뒤 잔에 손을 대지 않고 병 목만 잡은 채 술을 마시는 방식이다. 병 바닥 위에 올라간 술 잔은 깨지지 않은 종이컵으로 하는 게 위험하지 않다.

병천 오일장은 1과 6으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장터엔 아직도 품바와 인절미 장사가 춤을 추고, 장사치가 “뻥이요~”하면 굉음 사이로 터져 나오는 뻥튀기를 구경할 수 있다.

11월 단풍길이 인기 있는 독립기념관에선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폭파시킨 옛 총독부 두껑을 찾을 수 있다. 두껑은 일제의 심장부라 할 만한 총독부의 상징으로, 원형경기장처럼 지하에 조성해 국민의 발밑에 두었다. 찾기 쉽지 않으니 단풍 산책길을 거닐다 신경써서 챙겨보자.

‘젊음의 광장’ 아라리오 조각공원

이젠 보다 우아한 걸음걸이로 예술을 감상하는 시간. 아라리오 조각공원은 천안종합터미널, 아라리오갤러리, 신세계백화점을 연결하는 천안의 중심 광장이다. 하루 7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이곳은 특히 학생, 청소년이 많이 찾아 젊음의 광장, 희망의 광장으로도 불린다.

아라리오 갤러리

1989년 조성된 아라리오 조각공원은 (주)아라리오 창업자이면서 아트컬렉터이자 작가인 씨킴(CIKIM, 본명 김창일) 회장이 30여 년 동안 세계적 작품들을 수집해 설치해 놓은 아트명소이다.

세계적인 조각가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수백만 마일’, 데미언 허스트의 ‘찬가’, ‘채러티’ 등 유명 작가들의 수준 높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신(新)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페르난데스는 96일 간의 현장 작업 끝에 가로 6m, 세로 6m, 높이 20m의 초대형 조형물을 이곳에 완성했다. 천안의 문화 상징이 아라리오 조각 광장이라면, 이 광장의 상징은 아르망의 작품 ‘수백만 마일’이다.

2005년 설치된 데미언 허스트의 7m에 달하는 대형 조각 ‘채러티’는 설치 그 자체가 하나의 행사가 되었다. 이 외에도 왕광이, 키스 헤링, 수지엔구어, 브래드 하우, 성동훈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설치하면서, 외신에 자주 등장하는 세계적 미술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광장 한쪽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선 지구촌 현대 미술 작품들이 쉼 없이 교체된다. 모든 것이 무료.

뚜쥬루 빵마을

프랑스 빵 공장 천안 뚜쥬루는 빵 맛도 일품이거니와 작은 유럽의 한 조각 같은 빵 마을 자체의 풍경도 아름답다. 가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한해 결실을 앞둔 이 가을, 편안하고 향기로운 천안 여행은 어떠한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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