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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대 침몰하지 않는 전함 USS 포트드럼[오상현의 무기큐브]

[헤럴드경제=오상현 기자]1895년. 미국 바로 아래 있는 쿠바가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스페인 본국에서 쿠바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미국은 쿠바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바나항에 전함 메인호를 파견했는데 1898년 2월 5일, 메인호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해 266명의 미 해군이 사망했습니다.

미국은 메인호 폭발사고가 스페인의 공격 때문이라며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신호탄이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쿠바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전선은 스페인의 모든 식민지로 확대됐습니다. 5월 1일. 미국의 조지 듀이가 이끄는 함대가 필리핀 마닐라 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괴멸시킵니다.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괌과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죠.

미국은 선전포고한 지 6개월만인 같은 해 8월까지의 전투에서 쿠바와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 스페인의 거의 모든 식민지를 빼앗았고 스페인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결국 그 해 12월 10일 양국은 파리 강화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습니다.

포트 드럼은 이렇게 빼앗은 필리핀의 본섬 마닐라 만 입구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 섬입니다.

당시 미국의 전쟁부장관이자 요새위원장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지시로 만들어졌습니다.

윌리엄 H. 태프트.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느낌 안 드십니까?

네 우리에게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인물입니다.

미국의 윌리엄 태프트 전쟁부 장관과 가쓰라 다로 일본 내각총리가 1905년 7월 27일 만나서 나눴던 대화에서 일본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 통치하는 것을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해 한반도를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용인했습니다.

자, 다시 포트 드럼 얘기로 돌아가죠.

마닐라 만 앞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코레히도르 섬을 포함해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코레히도르와 카발로, 카라바오, 엘 프레일 등 섬 4곳을 요새화하는 계획을 입안했습니다.

이 요새들의 목표는 적의 함정이 마닐라 만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만약 누군가 침략을 한다면 필리핀과 미국 군인들이 미국 본토에서 본대가 도착할 동안 지연전을 펼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건설은 1909년 4월부터 약 5년간 지속됐습니다. 미국 육군 공병대가 임무를 맡았죠.

암초와도 같은 바위섬에 그냥 무기를 올려놓을 수 없었던 미군은 엘 프레일 섬의 바위들을 수면 높이까지 남기고 모두 깎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깎아낸 자리에 두꺼운 강철과 콘크리트로 전함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생김새가 꼭 전함의 앞부분 같았습니다. 때문에 절대 침몰하지 않는 전함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죠.

포트 드럼이라는 이름은 요새 건설을 시작하던 해에 사망한 미국-멕시코 전쟁과 남북전쟁의 영웅 리처드 쿨터 드럼 미 육군 준장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전함은 아니지만 마치 전함인 것처럼 제원을 살펴보겠습니다.

길이 110m, 너비 44m, 썰물 때 물 위로 드러나는 높이 12m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주둔시설과 각종 무장을 장착했습니다.

벽의 두께가 10~13m, 천장의 두께도 약 7m로 함포의 포격을 충분히 견디고도 남을 만큼의 방호력을 갖췄습니다. 게다가 취약부위라고 판단한 곳에는 76~101㎜ 두께의 강철 장갑까지 덧댔습니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전투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대공방어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음에도 말이죠.

무장은 14인치, 356㎜ 40구경장의 M1909 2연장 포탑 2문을 주포로 사용했습니다.

M1909포는 포트 드럼 전용으로 만들어진 포로, 포탑 1기가 1053t에 이르고 0도에서 상방 15도까지 조정이 가능했습니다.

좌우각도는 360도 회전이 가능했지만 앞쪽에 있는 1번 포탑의 경우 뒤에 있는 2번 포탑에 걸려서 230도로 운용을 제한했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포로 548.39㎏의 포탄을 포구속도 721.76㎧로 최대 20.76㎞까지 포탄을 날릴 수 있었죠. 다만 실전에서는 17.55㎞까지 사격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미 해군 전함의 14인치 주포와 비교하면 포탄의 무게는 가볍지만 연사 속도가 함포는 분당 1.5발, 드럼 요새의 포는 분당 2발로 드럼 요새의 포가 더 빨랐다고 합니다.

포탑의 장갑은 당대 전함보다 더 두껍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포탑 앞쪽은 406㎜, 상부는 114~152㎜였고 포탑 아래쪽에 둥근 원통부분인 바베트도 229~406㎜의 두께를 자랑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은 외부를 관측하는 3개의 잠망경이 포탑 외부로 20㎝가량 노출되는데 잠망경을 보호하는 장갑은 2㎝도 안 되는 수준이라 적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했다고 합니다.

부무장은 미 육군의 6인치, 152㎜ 45구경장 M1908 해안포 4문을 사용했습니다.

최대 상하각도는 12도로 제한했고 최대 10.42㎞ 까지 40.82㎏의 포탄을 날릴 수 있었죠.

탄착지점을 관측하고 사격지휘를 하기 위해 당시 전함과 똑같이 약 20m 높이의 마스트도 설치했습니다. 야간 전투를 위해 3m 직경의 탐조등 2기도 배치했죠.

통신장치는 각 요새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을 이용해 전화연락을 할 수 있었고 152㎜ 부무장 안에서 램프를 껐다 켜면서 신호를 보내는 일종의 봉화 같은 수단도 이용했다고 합니다.

특정 각도에서만 관측할 수 있게 미리 정해 놓고 그곳에서만 불빛을 볼 수 있게 한 것이죠. 제법 효과가 좋았다고 합니다.

장교와 병사 등 240여명의 미군들은 대부분 요새 안쪽 깊숙한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생활관은 물론 발전기와 탄약고도 그 안에 있었죠.

이렇게 1916년까지 약 5년 동안 진행된 공사 이후 이 요새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작동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말이죠.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습니다. 같은 날 괌과 웨이크섬, 필리핀은 물론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과 태국 등에서도 일제히 일본군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일본의 선전포고는 공격이 진행된 다음 날 미국과 영국에 전달됐죠.

포트 드럼도 태평양전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요 타깃이 됩니다.

애초에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한 것은 미국에 대규모 피해를 입혀서 전쟁능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만든 다음 미국과 협상을 통해 아시아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의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27대 미국 대통령이 전쟁부 장관 시절 맺은 가쓰라-테프트 밀약은 이미 아버지 시절 술안주꺼리가 된 지 오래였습니다.

1942년 1월 2일, 포트 드럼은 일본의 집중적인 공습을 견뎌냈습니다. 미군은 이 공습 이후 취약했던 요새의 뒷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3인치, 76㎜ 해안포를 추가로 설치합니다.

그리고 설치한 바로 다음 날인 1월 13일, 설치한 포의 콘크리트가 다 마르기도 전에 일본의 증기선에 포를 발사해 일본군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이날 사격은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적에게 가한 최초의 포격이라는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수많은 일본군의 공격에도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포트 드럼은 약 5개월 만인 1942년 5월 6일, 4개의 요새 중 가장 큰 섬인 코레히도르가 함락되면서 필리핀 지역의 미군이 항복하면서 포트 드럼에 있던 미군들도 퇴각했습니다.

미군이 주둔하는 기간 동안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었고 단 5명의 부상자만 발생했던 최고의 요새였습니다.

이런 시설이 일본군에게 넘어가자 오히려 전쟁 막바지에는 미군에게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1945년 미국이 마닐라 섬을 탈환했을 때 일본군이 마지막까지 점유했던 곳이 바로 포트 드럼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가솔린과 디젤을 섞은 9500리터의 기름을 통풍구로 붓고 백린탄을 박격포로 날려 불을 붙여서 요새 내부를 날려버렸습니다.

그 이후 상황은 너무 끔찍해서 굳이 설명하기가 싫군요.

지금은 마닐라 만에 진입하는 배를 위해 간이 등대가 설치돼 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파괴된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죠.

포트 드럼을 보면서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한 난사군도, 스프래틀리 군도의 인공섬이 생각났습니다.

중국은 이 지역 7개 산호섬에 인공섬을 건설했고 지금은 전투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공항도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 지역을 자유롭게 항행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죠.

100년 전 미국과 지금의 중국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배워야 할까요? 여러분의 의견 댓글로 남겨주세요~

프로파일럿= 기자 오상현 / PD 박정은, 우원희, 김정률, 김성근 / CG 임예진, 이윤지 / 제작책임 김율 / 운영책임 홍승완

지각 변동이 없는 한 이 전함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포트드럼ㅣ무기큐브
포트드럼
legend199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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