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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물코기” 납득가능한 서바이벌·장인정신 가치… ‘흑백요리사’ 돌풍 이유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화제성 1위, 전 세계 비영어권 1위 돌풍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에드워드 리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물…물코기.”

미국 요리 서바이벌 ‘아이언 셰프’의 우승자이자 백악관 만찬 셰프의 에드워드 리는 명실상부 ‘스테이크 장인’이다. 그런 그가 한국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에 출연, 팀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은 ‘생선’ 파트로 가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툰 한국말로 내뱉은 짧은 한 마디는 금세 밈이 됐고, 이는 ‘흑백요리사’ 최고의 ‘어록’으로 이름을 올렸다. 누리꾼들은 “백수저 셰프들의 팀전 비극을 알아차린 아이언 셰프의 혜안에 놀랐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흑백요리사’ 돌풍이다.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물 1위 자리에 가볍게 안착한 프로그램은 숱한 화제를 나으며 모처럼 파급력 강한 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은 재야의 고수에 가까운 무명 요리사와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스타 셰프들이 흑백 계급으로 나눠 ‘맛’으로 진검승부를 벌이는 요리 서바이벌이다. 심사위원은 ‘외식업계의 왕’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대한민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인 안성재 셰프. 예측불가능한 미션에 임하는 셰프들의 장인정신과 공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경쟁과 심사는 기존 서바이벌 예능의 불편함을 걷어내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프로그램은 화제의 연속이다. ‘흑백요리사’는 현재 콘텐츠 업계의 ‘밈 생성기’이자 조회수 깡패로 떠올랐다. OTT 시대 이후 프로그램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화제성’에선 압도적인 숫자를 기록 중이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콘텐츠 중 가장 많이 시청한 프로그램 1위에 오른 ‘흑백요리사’는 2023년 ‘더 글로리’ 파트2 이후 가장 화제성 높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이름을 올렸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집계 결과 흑백요리사는 공개 2주차에 8만 1000점을 기록했다. 2주 연속 세계 1위에 오른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은 2023년 ‘피지컬:100’ 시즌1 이후 처음이다.

프로그램의 화제성에 파생 콘텐츠도 인기다. 출연하는 셰프들이 유튜브를 통해 올린 리뷰, 뒷얘기 콘텐츠는 순식간에 100만뷰를 넘는다. 특히 심사위원인 백종원 대표의 유튜브 채널에 안성재 셰프, ‘중식 대가’인 여경래 셰프가 출연해 뒷얘기를 털어놓자 각각 868만회(안성재 셰프 출연), 547만회(여경례 셰프 출연)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밖에도 ‘딤섬의 여왕’ 정지선 셰프, 여경래 셰프, ‘흑셰프’들의 파생 콘텐츠가 등장만 하면 수십~수백 만 조회수를 금세 달성 중이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제공]
일관성 있는 심사 기준·공정성과 전문성…통념 깬 서바이벌

흔하디 흔한 요리 서바이벌이다. 그럼에도 ‘흑배요리사’는 통한 것은, 기존의 통념과 관행을 깼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애초 ‘계급 전쟁’이라는 꽤나 자극적인 타이틀을 들고 나왔으나, 이는 단지 장치이자 홍보 수단이었을뿐 뚜껑을 연 서바이벌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흑백요리사’는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구미’가 꽉꽉 채워져있다.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갈증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들은 다들 쟁쟁하다. ‘2010 아이언 셰프’ 우승자 에드워드 리를 비롯해 중식 대가 여경래, ‘한식대첩2’ 우승자인 조영숙, ‘딤섬의 여왕’ 티엔미미의 정지선, ‘마스터 셰프 코리아2’ 우승자 최강록, 이탈리아 미슐랭 1스타 오너 셰프 파브리 등 20명의 백수저 셰프를 비롯해 이름만 알려지지 않았을뿐 소위 ‘줄 서는 맛집’으로 정평이 난 흑수저 셰프 20명이다. 당초 80명의 흑수저 셰프 중 백수저 셰프와 겨룰 20명이 걸러졌다.

단계별 미션과 미션 이후 심사과정은 시청자들이 불편함 없이 볼 만한 경쟁 구도를 만든다. 흑수저 대 백수저 요리사의 일대일 대결, 패자부활전, 흑수저 대 백수저 팀전, 흑백 혼합 팀전에 이르기까지 예측을 뛰어넘는 미션을 골랐다. 정지선 셰프는 “셰프들끼리 단톡방에서 미션을 예측해보긴 했지만 내내 예상을 빗나갔다”며 “팀전을 할 땐 편하게 칼만 들고 오라고 해서 팀플을 하게 될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제공]

사실 이 미션들은 대결보다는 자신의 요리세계를 보여주는 과정의 기록에 가깝다. 셰프들은 공들여 음식을 만들고,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게 평가한다. 흑배 셰프들의 일대일 대결에선 안대로 눈을 가린 뒤 오로지 ‘앗’으로만 평가했다. 눈을 가리고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했는데도 두 사람의 의견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점, 초반 대결에서 백수저들이 줄줄이 합격점을 받은 것도 이색 포인트였다.

흥미로운 것은 셰프들의 심사기준에 대한 일관성이다. 안성재 셰프는 굉장히 꼼꼼하고 까다롭다.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시하고 음식 전체의 간, 고기의 굽기, 식감, 주제와 요리의 연관성 등 모든 것을 본다. 심지어 깐깐한 기준에 흑수저 셰프인 요리하는 돌아이는 “(안성재 셰프는) 혀에 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백종원 대표 역시 ‘요식업계 1인자’이자 누구보다 다양한 미식세계를 경험한 전문가 답게 셰프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했다.

보통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세 명의 심사위원을 둔 것과 달리 ‘흑백요리사’는 심사위원조차 흑백(요식업 VS 파인다이닝) 구도를 만들며 난상토론을 벌이게 했다. 두 사람이 다른 의견으로 토론할 때 이들은 결국 ‘음식의 완성도’를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일관되게 제시했다. 납득가능한 심사와 평가는 시청자는 물론 셰프들도 설득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엔 독설이나 인신공격은 찾아볼 수 없고, 자극적인 편집도 배제한 꼼수 없는 연출로 직업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보여줬다.

출연하는 셰프들 역시 상대에게 패했거나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들으며 인정하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주는 부분이었다. 다만 최근 공개된 흑백 혼합 팀전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방출’ 제도와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보다는 ‘장사 노하우’로 승패를 가른 회차는 기존 ‘흑백요리사’의 강점을 살리지 못한 ‘헛발질’이었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넷플릭스 제공]
‘장인정신’의 가치 보여준 정교한 미식 세계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어요. 다시 돌아가서 뭔가를 고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가야죠.” (에드워드 리)

‘흑백요리사’의 또 다른 매력은 ‘정도’를 걸어온 셰프들의 ‘장인정신’에 있다. 수천, 수만 번이 칼질로 수련하듯 자신의 길을 닦아온 셰프들은 흑과 백을 떠나 모두가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아웃풋을 내놓는다.

시청자들 역시 한 접시에 담긴 인고의 시간과 잘 만든 음식의 가치에 감동하고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그동안 우리는 맛집은 많이 찾아다니며 음식의 맛에 대해 평가는 해왔지만 하나의 식재료가 어떻게 길러지고 손질돼 조리괸다는 것, 즉 조리 관여도(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정보 탐색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가 높지 않았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조리 관여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제공되고 있다”고 봤다.

셰프들이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물론 심사위원 안성재의 평가의 정교함이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다. 문 교수는 특히 “안성재 셰프의 ‘모수’가 내놓는 음식은 맛의 그라데이션, 입안에서 퍼지는 식감과 속도, 재료의 익힘 정도 등을 모두 고려한다. 그의 요리관은 심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깨워주고 있다”고 했다.

탁월한 아이디어로 기존의 식재료를 해체해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흔해 보이는 요리에도 셰프만의 비법으로 완전히 다른 맛을 내는 공 들인 미식 세계를 향한 관심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TV 밖에선 출연 셰프들의 레스토랑 도장깨기 열풍에 한창이다.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흑백요리사 셰프들의 10월 내내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이 앱에선 흑백요리사 탭을 따로 만들어 이용자들이 쉽게 예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예약가능한 레스토랑은 거의 없다. 외식업계에선 ‘흑백요리사’ 열풍이 불경기로 얼어붙은 업계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교수는 “한국은 파인다이닝 불모지와 다름없다. 맛집과 인기 음식으로의 쏠림 현상은 있지만 파인다이닝의 정교한 음식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선 인식이 높지 않다”며 “프로그램은 파인다이닝이 단지 사치스럽거나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잘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요식업계에 훈풍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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