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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데스타운’ 두 신입생 최정원·김민석 “인생의 위로가 되는 헤르메스 만나길…” [인터뷰] 
그리스 신화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데스타운’
헤르메스 최정원ㆍ오르페우스 김민석 호흡
“‘엄마 같은’ 최정원” “‘나의 크리스틴’ 김민석”
뮤지컬 ‘하데스타운’ 헤르메스 최정원·오르페우스 김민석 [에스앤코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정하게 빗어넘긴 위엄있는 은발, 점잖은 슈트를 입은 헤르메스(최정원 분)가 등장하니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수선스런 소음이 잦아들면 신(神)의 시선은 오르페우스(김민석 분)에게 머문다. 카나리아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세상에 꽃을 피우는 그에게 헤르메스는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자 삶의 지침을 일러주는 지혜의 신, 나약한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데스타운’. 뮤지컬은 이번 시즌에 두 명의 신입생 최정원·김민석을 무대로 불렀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금 더 오래 경험한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고, 저에게 필요했던 신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넘어지면 ‘넘어지는 것도 선물’이라고 이야기해주고, 다시 일어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신의 모습이요.” (최정원)

한국 뮤지컬 1세대 배우로 숱한 스테디셀러 명작을 남긴 최정원은 사실 ‘다작 배우’다. 뮤지컬계의 100만 대작 ‘시카고’는 24년, ‘맘마미아’는 17년째 해오고 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무대를 섭렵해온 그는 올해의 신작으로 ‘하데스타운’(10월 6일까지 샤롯데씨어터·10월 18일부터 부산드림씨어터)을 선택, 최초의 젠더프리 헤르메스로 탑승했다. 그와 함께 무대를 연 또 다른 ‘신입생’은 멜로망스의 김민석이다. 두 사람은 두 달 전 ‘하데스타운’의 개막 첫날 떨리는 첫 무대를 함께 했다.

최근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난 김민석은 “최정원 선배와 만나 무대에서 키워지고 길러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헤르메스 최정원·오르페우스 김민석 [에스앤코 제공]

‘입사 동기(?)’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각별하다. 김민석에게 첫 뮤지컬을 함께 하는 대선배 최정원은 그에겐 헤르메스 그 자체다. 김민석은 “매번 무대를 할 때마다 정원 선배님에게 정서적으로 많이 의지한다”고 했다. 사실 이 작품엔 세 명의 헤르메스가 있다. 이번 시즌 합류한 최정원과 함께 초연부터 이름을 올린 강홍석, 최재림 등이 헤르메스 역을 맡고 있다. 김민석은 “세 헤르메스가 정말 다르다”며 “엄마(최정원), 삼촌(강홍석), 군대 선임이자 안내자(최재림) 같은 느낌”이라며 세 사람을 분석했다.

‘하데스타운’은 김민석에겐 불현듯 찾아온 ‘선물’이었다. 가요계의 ‘차트 괴물’로 멜로망스를 이끌고 있는 그는 “노래 활동에 대한 권태기가 올 때 쯔음 이 작품을 만났다”고 했다. 김민석이 연기하는 오르페우스는 목소리로 세상의 봄을 깨우는 음유시인이다. 7인조 밴드, 뉴올리언스 재즈와 아메리칸 포크, 블루스 등으로 꽉꽉 채워넣은 이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의 백미는 오르페우스의 음성이다. 팔세토의 미성과 극강의 고음으로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창법은 김민석의 보컬 강점을 살린다. 기존 멜로망스 노래를 통해 듣던 김민석의 음성과도 사뭇 다르다.

그는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뮤지컬 창법을 사용하고자 노력했다”며 “무엇보다 뮤지컬은 전달력이 중요하기에 창법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민석이 가장 잘하고 익숙한 것은 노래이지만, 가수일 때와 배우일 때의 노래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김민석은 “오래해서인지 멜로망스로 노래를 할 때는 소리를 내는 길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내 안에) 답이 정해져 있었다”며 “그런데 뮤지컬을 할 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전하고 연기를 더해야 하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헤르메스 최정원·오르페우스 김민석 [에스앤코 제공]

최정원은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김민석의 성장을 지켜봤다. 김민석은 연습 첫날부터 자신이 불러야 할 모든 노래를 완벽하게 연습해갔다. 그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연습 첫날부터 모든 노래를 다 연습해오진 않는데 첫 뮤지컬에 노래까지 독학을 해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김민석이 연습 첫날부터 모든 노래를 연습해 간 것은 사실 그날이 그에겐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었던 탓이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너무 떨려서 토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김민석을 처음 만난 최정원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처음 연습실에서 민석이가 노래를 하는데 내겐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이 크리스틴을 봤을 때의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팬텀은 눈부신 재능을 가진 크리스틴을 알아보고 그의 잠재력을 끌어낸다. 최정원은 이를 빗대며 “민석이는 나의 크리스틴이었다”며 “나의 모든 아이디어를 오르페우스에게 주는 기분이었다. 연습에선 잘 나오지 않았던 무대 장악력과 순수함이 보여 매순간 놀라고 있다”고 했다.

최정원에게 ‘하데스타운’은 오래 기다린 ‘꿈의 작품’이다. 그는 2022년 초연 당시 이 작품 속 ‘페르세포네’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맘마미아’와 스케줄이 겹쳐 함께 하지 못했다. 최정원의 헤르메스는 그에게도 의외의 만남이었다. 남성 배우가 도맡아온 역할이다 보니 그에게도 “운명적 도전이었다”고 회상한다. 최정원은 뮤지컬 속 모든 넘버를 기존 남성 배우들이 부르던 음역대로 소화한다. “처음엔 음이 낮아 아쉬웠는데, 감기에 걸리거나 목이 잠겨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노래가 잘 나와 좋다”며 웃었다.

한국의 첫 젠더프리 헤르메스가 된 최정원에 대해 김민석은 “적어도 내게 젠더프리 헤르매스에 떠오르는 사람은 정원 선배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최정원은 “패티김 선생님이라면 완벽한 젠더프리 헤르메스였을 것”이라며 “근데 제가 뮤지컬계의 패티김으로 불리니 안성맞춤”이라며 웃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헤르메스 최정원·오르페우스 김민석 [에스앤코 제공]

이 무대에서 최정원은 기존 그의 히트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능수능란하게 관객을 쥐락펴락하고, 탄탄한 가창력과 압도적인 연기력, 기습 애드리브까지 보여주던 ‘인간 도파민’ 최정원이 아닌 보다 절제하고 덜어낸 그를 만나게 된다. 그리스 신화 속에 들어가 완전히 색다른 신의 모습을 창조했다. 김민석은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해 온천인 줄 알았다”고 했다.

“무대에 설 때마다 제가 바라보고 마주하는 헤르메스를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눈에 카메라를 달고 전광판에 띄우고 싶어요. 매순간 다가오는 진심이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저의 시선에서 헤르메스를 만난다면, 많은 분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될 거예요.” (김민석)

최정원이 바라는 헤르메스가 바로 그 모습이다. 최정원은 “내겐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오르페우스”라며 “무대 위 헤르메스가 엄마 같은 신이길 바란다”고 했다. 그것은 최정원이 바라는 배우이자 자연인인 그의 먼 훗날이기도 하다. 그는 “헤르메스 같은 선배이자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데스타운’은 두 배우 모두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최정원에겐 또 하나의 역작이 생겼고, 김민석에겐 또 다른 길을 열어줬다.

“늘 100%를 다하면 혹여 듣게 될 쓴소리에 가슴이 아플까봐 80%만 해왔어요. 그런데 지금 이 무대에선 매순간 120%를 쏟아내고 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롭고 활력이 되는 시간이에요.” (김민석)

“헤르메스를 만났을 때 운명의 종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제가 한 작품을 참 끈질기게 오래 하잖아요. 이 작품도 오래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와요. 헤르메스는 더 나이가 많아야 잘 할 수 있는 역할이에요. 죽지 않는 이상 길게 가는 작품이 있는데, 제가 한 80대가 되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정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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