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점比 철광석 -37%·브렌트유 -24%·알루미늄 -14%
“중국發 침체 한동안 지속” vs “침체 단정 시기상조”
[챗GPT를 사용해 제작함] |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 중인 미국발(發) ‘R(Recession, 침체)의 공포’ 그림자가 최근 주요 원자재 가격의 흐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랠리,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피벗(pivot, 금리 인하) 가시화 등 가격 인상의 다양한 이유를 뒤로 하고 구리, 알루미늄, 원유, 철광석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우하향 곡선을 그리면서다. ‘안전 자산’의 대표격인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 기록을 또 한번 갈아 치울 기세란 점도 경기 침체에 대한 짙은 시장 우려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선물 종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기준 톤(t)당 893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연중 최고점(5월 20일, 1만857달러) 대비 17.7%나 하락한 수치다.
전문가들이 구리 가격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실물 경기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구리 박사님(닥터 코퍼, Dr.Copper)'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기차, 전선, 신재생에너지 등 성장 산업에 없어선 안 될 금속이란 점에서 구리 가격을 보면 향후 경기 전망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 5월까지만 해도 AI 산업 발전이 본궤도에 올라 속도를 높일 것이란 기대감과 더불어 전력 수요 급증 등에 대한 전망으로 인해 구리 가격이 치솟았다. 특히, 미 연준이 단기간 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서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기가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사이클에 올라탈 것이란 기대감이 지배했었다.
하지만,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경기 위축이 예상을 크게 뛰어 넘어 장기화 추세를 보이는 데다,
금리 인하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투심도 9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한 번에 50bp 금리 인하, 1bp=0.01%포인트)’을 단행할 가능성을 보고선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구리 가격 역시 꺾인 상황이다.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 탓에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로 불렸던 글로벌 증시 폭락장이 펼쳐졌던 지난달 5일 구리 가격은 t당 8620.50달러까지 급락한 바 있다.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약화하며 지난달 27일 9247.50달러까지 회복, 6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업·소비 지표 등의 발표로 ‘R의 공포’가 되살아나며 다시 하락한 구리 가격은 9000달러 선을 넘지 못하는 분위기다.
구리 이외에 다른 주요 원자재 가격이 공통적으로 가키리는 곳도 ‘경기 침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ICE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69.19달러로 2년여 만에 70달러 선이 붕괴한 모습을 보였다. 연중 최고가 90.65달러(4월 4일)와 비교했을 때 23.67%나 하락한 수준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요인과 미국 허리케인의 석유 관련 시설 급습 가능성 등의 변수보다도 경기 하강에 따른 원유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10월물 철광석 선물 가격도 지난 9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한때 89.60달러를 기록하면서 90달러 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연중 최고치(1월 3일, 144.16달러) 대비 36.68% 하락한 수준이다. LME에서 알루미늄 가격도 10일(현지시간) 기준 t당 2323달러로 연중 최고치(5월 29일, 2695달러)보다 13.8% 떨어졌다.
반대로 경기 침체 시 ‘안전 자산’으로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금 가격은 10일(현지시간) 기준 온스(oz)당 2543.10달러로 지난달 29일 기록한 역대 최고가(2560.30달러)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달리는 분위기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원자재 가격 흐름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중국 경기의 회복 지연에 따른 수요 부진이 가시화됐다는 점이 원자재 가격을 끌어 내리는 공통적인 요인으로 작용 중이란 지적이다.
더 나아가 중국 경기 침체가 연쇄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도 영향을 끼쳐 전세계적인 경기 위축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예상과 달리 더욱 장기화될 경우 중국발 디플레이션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 특히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시커먼 먹구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칠레 국영 구리위원회(Cochilco)는 올해 구리 평균 가격 예측치를 파운드당 4.18달러(t당 9212달러)로 기존 5월 추정치 4.3달러보다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RBC 캐피탈 마켓 역시 기존 전망치 대비 4% 낮아진 파운드당 4.17달러를 구리 평균 가격 예측치로 책정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제프 커리 칼라일그룹 에너지경로 최고전략책임자는 “구리 가격이 구조적 공급 부족에 기반해 바닥을 다졌지만, 구리 소비의 핵심인 중국 부동산 시장에선 약세 심리가 지배적”이라며 “t당 8500~9500달러의 좁은 범위에서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유가 전망 역시도 수요 감소에 다른 하방 압력이 한동안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단 평가가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은 올해 세계 원유 수요가 일간 약 200만배럴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며 이전 전망보다 약 8만배럴을 낮춰 잡았다. 내년 수요 증가 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4만배럴 적은 일간 170만배럴로 전망을 수정했다. 불과 한달 전 하향 조정에 이어 또 한번 수요 감소를 점친 셈이다.
한편, 일각에선 최근 원자재값 하락을 경기 침체 전조로 해석하기엔 아직 이르단 반론도 나온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AI 기술 발전, 데이터센터 증설 등을 고려하면 구리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상 기후와 글로벌 광산 운영의 불안정성을 고려하면 공급은 빡빡한 상황”이라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위험 자산 선호 심리가 지금보다 강해져 구리 가격도 반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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