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신탁사 가장 큰 적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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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금융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뇌관으로 떠오른 부동산 신탁사의 ‘책임준공관리형(책준형) 토지신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PF 연착륙’ 방안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PF 부실화가 전국적으로 안정화되고 있지만, 신탁사의 책준형 토지신탁에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자본비율 기준 강화 등 각종 제도개선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의 신탁사(KB부동산신탁·신한자산신탁·하나자산신탁·우리자산신탁)는 지난 상반기에만 23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4사가 합쳐 1592억원의 순익을 보고 있었지만, 1년만에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한 곳은 신한자산신탁으로, 이 회사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534억원의 순익을 냈지만 반년만에 적자전환, 17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KB부동산신탁 역시 지난해 말 84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더니 상반기 1058억원까지 적자폭이 커졌다.
신탁사의 실적이 곤두박질 친 건 이들의 ‘책준형 신탁’사업 때문이다. 책준형 신탁은 신탁사가 대주단에게 ‘책임지고 준공하겠다’는 약속한 사업이다. 시공사가 부도 등의 이유로 준공하지 못하면 신탁사가 다른 시공사를 구하든 대주단에 손해배상을 하든 최종 책임까지 지는 형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던 2019년~2022년까지 각 지주사의 신탁사는 실적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책준형 토지신탁은 리스크가 높은 만큼 수수료율이 높아 부동산 상승기에 각사가 경쟁적으로 사업을 수주했고, 수탁고가 크게 증가한 탓이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신탁회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 부동산PF 관련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책준형 토지신탁의 수탁고는 2020년 12월 8조4000억원에서 2023년 9월 약 3년만에 1000억원으로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KB부동산신탁의 책준형 사업장은 180개, 신한자산신탁 167개, 하나자산신탁 119개, 코리아신탁 117개, 우리자산신탁 108개 순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각사가 쌓아올린 수탁고가 부실화 돼 각종 배상책임과 소송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활황기 신탁사가 수주한 책준형 토지신탁 중 많은 곳이 올해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돌아와 특히 분양율이 저조한 사업장에서 신탁사의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책준형 토지신탁은 시공능력이 떨어지는 중소 건설사를 시공사로 하는데 이들 건설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사례가 늘면서 대주단이 신탁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책준형 토지신탁에 대한 신탁사 모범규준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구체적으로 신탁사가 대주단에 대해 신탁사가 손해배상을 한다고 명시돼있는 부분을 수정하고, 또 수탁한도를 자기자본 대비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등의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책준형 사업모델을 전면 금지하고 싶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라며 “다만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가운데 업계에선 사업이 위축돼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경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인해 신탁회사 부실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실무상 책임 준공의무에 따른 배상책임이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내용이 신탁계약상 들어가고 있어 이를 적정한 수준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며 “신탁계약상 신탁회사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대출원리금 일체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아 대주단은 실제 손해액과 상관없이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 전부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계약 조항에서 신탁회사의 책임은 책임준공에 관한 것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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