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 신관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속 주인공 구보는 하루 종일 서울 도심을 걸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식민지로 전락한 암울한 경성을 배회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도시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확확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이 차곡차곡 쌓은 좌절과는 분명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구보는 갈 곳 없이 헤맸다. 강제적이고 갑작스러웠던 식민지 통치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금의 서울 곳곳에서 그는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신간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은 우리가 부러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를 기어코 끄집어 낸다. 대표적으로 식민, 분단, 이산(離散)의 기억이다. 집필을 위해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젊은 연구진들과 교수들은 켜켜이 쌓인 한국의 아픈 기억 17편을 찾아내 오늘날의 사진과 함께 책에 담았다. 구보가 걷던 경로도 그중 하나다.
구보는 1934년 어느 날 정오 무렵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4시간 동안 걸었다. 그의 동선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조선인의 중심지였던 북촌인 종로 ▷관청가인 광화문통 ▷경성부청과 대한문의 대비를 보이는 태평통 ▷경성역-남대문-조선은행으로 이어지는 남대문통 등이다.
시작은 다옥정 7번지다. 구보의 집이 있던 곳이다. 소설을 집필한 박태원 작가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의 한국관광공사 부근이다. 그렇게 문밖을 나선 그가 가장 먼저 지나친 곳은 조선 도성에서 가장 큰 다리인 광교. 정식 명칭은 광통교다. 경복궁부터 숭례문까지 도성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심 통로에 자리 잡고 있다. 구보는 광교 모퉁이에서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는 자전거를 재빨리 피하지 못하며 오랜 시간 앓던 귓병에 대해 생각한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 했지만 스스로는 틀림없이 중이염에 걸렸다고 판단한다.
그는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종로를 지나 조선은행에서 하차한다. 그가 이곳에서 내린 이유는 지금은 더플라자호텔에 자리한 끽다점 낙랑팔라에서 친구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끽다점은 일본어 ‘깃사텐’(喫茶店, 찻집)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당시 이곳은 모던한 음악이 흐르고 서양식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구보에게는 찻집 밖 어두운 일제의 본모습과 대비되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구보가 관찰한 경성은 어딜 가나 두통과 우울을 불러오는 공간이었다. 지금의 세종로를 지칭하는 광화문통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남대문 안팎에서는 몰락한 왕조의 현실을 떠올리고, 경성역을 복원해 2011년 개관한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일확천금을 바라는 금광 브로커들의 실체 없는 욕망을 마주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성 중심지를 숱하게 지나다녔을 구보에게 이러한 모든 풍경은 실의에 빠지게 하는 총체다. 익숙한 오늘날의 서울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기억 앞에서 뿌리 깊게 내재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은 그 상처를 대면하는 일임을, 책장을 덮고 나서야 저자의 발자취를 뜨겁게 이해하게 된다. “구보가 식민지 수도 경성의 삶이라는 현실을 거부할 순 없어도 글쓰기를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고 현실을 고발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과 욕망을 들여다봄으로써 암울한 여기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빛줄기를 품을 날을 기대해 본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토록 간결하고 선명하다.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지음/지식의 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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