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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반은 연주자의 명함”…주목할 20대 연주자 박재홍·김유빈
박재홍, 라흐마니노프·스크랴빈 음반 발매
김유빈은 ‘플루트의 심장’ 프랑스 담아내
피아니스트 박재홍 [유니버설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음반은 음악가의 명함이에요.” (플루티스트 김유빈)

지금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은 ‘빅3’ 시대로 불린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이 등장해야 ‘티켓 전쟁’이 일기 때문이다. 빅3가 이끄는 한국 클래식 시장에 두 연주자가 정성스레 새긴 명함을 들고 왔다. K-클래식 시장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두 20대 연주자, 피아니스트 박재홍(25)과 플루티스트 김유빈(28)이다.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새 국제 무대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며 인정받았다. 박재홍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총장을 사사한 국내파로,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포함, 다섯 개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올 가을부터 ‘피아노 거장’ 안드라스 쉬프와 함께 공부하는 그는 데카 코리아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와 스크랴빈 음반을 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박재홍은 “유학을 가면 쉬프 선생님과는 독일 음악에 매진할 생각”이라며 “그래서 오랜 시간 마음에 품었던 라흐마니노프를 꺼내놓은 이번 음반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며 “당분간은 안녕을 고할 러시아 작곡가들을 향한 인사”라고 했다.

ARD국제음악콩쿠르 플루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 1위 없는 2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등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관악계의 신동’ 김유빈은 소니 클래시컬을 통해 첫 정식 음반 ‘포엠(Poeme)’을 냈다. 그는 “심혈을 기울인 음반을 제 손에 쥐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이 이뤄져 정말 꿈만 같다”고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피아니스트 박재홍 [유니버설뮤직 제공]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라흐마니노프”…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고군분투

187㎝의 큰 키에 도에서 다음 옥타브 솔까지 향하는 기다란 손가락. 마치 198㎝의 거구인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 위해 최적화된 것처럼 타고난 ‘신체적 장점’을 가진 박재홍은 “부모님께 제일 감사드리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엔 제 손은 더 커야할 것”이라고 웃었다 .

‘순수 국내파’로 국제 무대에서 눈 부신 성취를 거둬온 박재홍은 나이 답지 않은 성숙한 연주, 체격 답지 않은 섬세한 감성을 두루 갖췄다. 피아노 계의 지성인이라고 할 만큼 다독가이자 달변가다.

박재홍의 선택은 러시아의 동시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이다. 음반엔 스크랴빈의 24개 변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이 담겼다. 녹음은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의 프로듀싱으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했다. 박재홍은 이 음반을 통해 콩쿠르를 휩쓴 촉망받는 연주자에서 전문 연주자로 신고식을 치른다. 오는 25일 통영, 9월 1일 서울을 거쳐 울주, 대구, 경남에서 리사이틀도 예정돼 있다.

그는 “제겐 너무나 귀한 작곡가들이고, 어릴 때부터 라흐마니노프 1번을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더이상 못 참을 것 같아 연주를 하게 됐다”며 “대곡이면서도 서사가 두텁고 깊다 보니 악장별로 나눠졌다기 보단 한 곡처럼 흘러간다”고 말했다. 이와 대비를 이룰 곡으로 같은 스승을 둔 스크랴빈의 전주곡(Prelude)를 선택했다. “단편적으로 흐르면서도 독자적 흐름이 있는 곡”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꼽히지만, 박재홍이 고른 음악은 익히 알려진 곡은 아니다. 그는 “연주자의 의무는 작곡가가 남긴 유산 중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곡을 알리는 것”이라며 “다른 곡에 견줄 만큼 그 이상의 명곡이라 부담감이 컸다. 잘못 해석하거나 연주하면 ‘작곡가의 작품이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을까 싶어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3일 간 이어진 녹음 동안 하나의 전주곡을 200번 이상 연주했을 정도로 완벽에 다다르는 지난한 시간을 거쳤다.

그토록 사랑한 라흐마니노프였지만, 이번 녹음은 작곡가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는 굉장히 아름다운 멜로디를 쓰는 작곡가라고 생각했고, 저도 그의 킬링 프레이즈에 마음이 녹았다”며 “연주를 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올라오는 것을 즐기고, 카타르시스를 즐거워하던 사람이었는데 1번 소나타의 경우 선율에 집중하기 보단 베토벤 소나타처럼 구조적인 측면이 있어 그런 부분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연주가가 곡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때로 ‘감정적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박재홍은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순간이 많아 연주를 하면서도 그 향에 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향에 취하는 순간 지금까지 끌고온 힘이나 방향성을 희생될 수 밖에 없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가 늘 생각하는 건 연주자도 마라토너처럼 긴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라톤을 하다가 길 위의 꽃이 너무 예쁘다고 잠시 멈춰서 구경한다면 그동안의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때론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지만 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게 됐어요.”

오는 10월부턴 박재홍의 생애 첫 유학 생활이 시작된다. 다음 달 말 독일로 향해 입학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안드라스 쉬프와는 2022년 그의 렉처 콘서트에서 통역을 했던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박재홍은 당시를 떠올리며 “재밌고 힘든 경험인데 선생님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다”며 “당시 선생님께서 ‘네가 치는 피아노가 궁금하다’고 하셔서 슈만 소나타와 플랑크를 연주했다”고 말했다. 쉬프는 그 해에 박재홍에게 베를린 유학을 권했다. 박재홍의 여러 일정상 일 년을 유보했고, 올해 시험을 보고 독일 바렌보임사이트 아카데미에 합격해 쉬프를 사사하게 됐다.

“아직 공부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이에요. (부소니) 콩쿠르 이후 일 년 정도는 체력적, 정신적으로 준비가 덜 돼 힘들었지만, 지금은 무대에 서는 시간이 행복해요. 전 음악을 정말 사랑해요. 그 만큼 더 길고 오래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그렇기에 좋은 부담감과 초심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플루티스트 김유빈 [목프로덕션 제공]
김유빈, 플루트 음악의 심장으로 향했다…한 편의 시가 된 프랑스

김유빈에게 프랑스는 ’음악적 토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플루트를 연주한 그는 11년 전인 16세에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리옹과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학·석사를 졸업했고,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김유빈은 “프랑스와 플루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플루트라는 악기가 프렌치 스쿨의 전통을 길게 이어가고 있고, 저명한 플루티스트들 역시 프랑스 출신이라 플루티스트의 음악은 주로 프랑스 작곡가들로 이뤄져있다”고 했다.

그의 첫 정식 음반엔 프랑스의 인상주의부터 근현대 거장이 만든 프렌치 작품이 담겼다. ’플루트 음악의 심장‘인 프렌치 레퍼토리를 빼곡히 채웠다. 프랑스 근대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상캉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를 시작으로 드뷔시, 풀랑, 뒤티, 프랑크의 음악을 담았다.

그는 “첫 음반이다 보니 최대한 대중적인 곡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바로크 음악의 정체성을 피하고 조금 더 생동감 있는 색채로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은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함께 작업했다. 2021 부소니 콩쿠르 2위와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을 받은 김도현과의 만남에 김유빈은 “솔리스트 피아니스트와 작업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함께 녹음하고 리허설을 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며 “나의 음악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다. 다만 김유빈은 부소니 콩쿠르 당시 김도현의 연주를 너무나 좋아한 팬이었다. 그의 영상을 일일이 찾아봤을 정도다. 둘은 김유빈의 친구인 피아니스트 김준형(금호아트센터 상주음악가)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김유빈은 “(김도현은) 기술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너무도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며 “이번 녹음을 통해 협업하는 음악가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목 프로덕션에 따르면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며 불꽃이 터지는 폭발적 시너지가 압권이다. 뒤늦게 만난 ‘환상의 듀오’인 셈이다.

이번 앨범에서 김유빈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색채다. 플루티스트 김유빈만의 소리를 음반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김유빈에겐 언제나 “개성을 잘 녹아낸 음악을 들려주는 주자”라는 호평이 따라온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목프로덕션 제공]

그는 “작곡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지만, 그 작품을 연주하는 순간 나는 주인공이 된다”며 “연주자인 내가 작곡가를 대변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내가 주체가 돼 연주를 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 것이 연주자로의 방향성”이라고 했다.

김유빈의 음악적 기반은 프랑스에서 출발해 독일, 미국으로 확장됐다. 그는 프랑스에서 성장하며 플루트를 배우고,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종신 수석으로 7년 간 활동했다. 현재는 세계적인 거장 에사 파카 살로넨이 이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프랑스에선 플루트의 기본기를 다지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부분에 집중해 교육을 받았고, 독일에선 기술적인 부분을 마스터했다면, 지금 미국에선 그간 배워온 것들로 토대로 어떻게 음악적 표현을 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새 음반을 낸 김유빈은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함께 전국 리사이틀 투어를 시작한다. 서울 예술의전당(18일)을 시작으로 대전, 대구, 부산에서 관객과 만난다.

악단으로, 솔리스트로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는 그는 “앞으로 플루트계의 미래를 위해 현대 작품 역시 꾸준히 연주하고 싶다”면서 “새로운 소리를 창조하는 연주자로의 길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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