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 뉴욕 주식시장을 강타한 ‘블랙 프라이데이’ 가 태풍의 눈이 되면서 아시아 증시에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주가지수가 5일 일제히 역대급 폭락을 기록했다.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글로벌 자금 이탈, 인공지능(AI) 수익성 둔화, 중동 불안 등 악재가 한꺼번에 시장을 덮치자 패닉셀(공포에 따른 투매)이 벌어졌고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급락장이 연출됐다.
뼈아픈 대목은 미국과 일본, 대만 주식시장은 연초 대비 상승률이 높았지만 한국 증시는 상승분이 거의 없었음에도 여러 우려를 선반영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날 하루 외국인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 현물·선물을 2조2000억원 이상 순매도하며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한국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는 10.3%, SK하이닉스는 9.87% 하락해 주가가 연초 수준으로 돌아갔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경제위기에 취약한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부터 잽싸게 빠져나가는데 이번에도 한국이 지목된 것이다. 미국 수출 비중은 2018년 12%에서 지난 7월 17.7%까지 높아졌다. 미국의 경기침체는 전기차나 반도체 같이 미국 판매량이 많은 업종들에 큰 악재다.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도마에 오를 공산이 크다.
섣부른 금리인상으로 사상 최대의 주가 폭락을 시현한 일본의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은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했고 7월에는 0.25%까지 올렸다. 이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에 투자)가 청산 수순을 밟으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축소돼 증시 하락이 더 가팔라졌다. 급격한 엔고로 수출 비중이 큰 일본기업의 미래도 어두워졌다. 통화정책이 타이밍이 그래서 중요하다. 내수 부진과 집값·가계빚 사이에서 절묘한 선택을 해야하는 한국은행의 어깨가 무겁다.
최상목 경제 부총리는 6일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이 참여한 ‘F4 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외 충격에 따른 시장 변동성에 대해 충분한 정책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기침체에 대한 평가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 증시가 과도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지금 상황은 아직 실체가 모호한데도 과도한 공포에 떨며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분명 있다. 과거 급락 시에는 실물·주식·외환·채권 시장에 실질적인 충격이 동반됐던 반면 이번은 증시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다른 상황이다. 경제팀은 증시 충격이 수출과 내수 등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미리 방파제를 쌓는데 유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