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투 본격화하면 자동차·조선 직격탄…협력사까지 연쇄 타격
산업계 “타임오프제 폐기·노란봉투법, 노사 관계 근간 무너뜨릴 것”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의 1차 총파업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일명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개정과 타임오프 폐기 등의 내용을 담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산업계가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대외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노조 리스크’가 최근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 여파로 다수 기업과 협력사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11일 경제계 등에 따르면 산업 현장에서 노동계의 하투(夏鬪)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어나고 있다. 기아,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노조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양대노총과 산하 노조가 타임오프제 폐기를 필두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노조 회계공시 이슈 등을 중점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 카드’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노조 측이 폐기를 주장하는 타임오프제는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고, 사용자가 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노조의 규모에 비례해 ‘면제 시간’과 ‘인원’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노조 측에서 전임 근무자를 과도하게 요구해 노사 갈등으로 비화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 노조 480곳 가운데 13.1%가 타임오프제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현행 노동조합법상 타임오프를 위반할 경우 회사만 형사처벌 대상이 될 뿐 노조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조차 없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지하철공사 노조는 합의상 근로시간 면제자가 32명임에도 10배가 넘는 310여명이 지난해 타임오프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HD현대도 지난해 말 근로시간 면제가 가능한 인원의 2배에 달하는 40여 명이 노조 전임자로 활동했다.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모트라스는 허용 인원 한도가 8명이지만 35명에 달하는 노조 전임자를 두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 명령을 받은 회사가 추가 인원에 대한 현장 복귀명령을 내렸지만, 노조 측은 오히려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
모트라스는 현대차그룹에 전자장치를 포함한 핵심 모듈 부품 등을 납품하는 업체로, 지난 10일 금속노조 총파업에 동참했다. 1500명에 달하는 모트라스 조합원들이 이날 주간조와 야간조 각 4시간씩 총 8시간 동안 파업에 나섰다. 이로 인해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같은 날 낮 12시 이후 현대차 울산공장의 모든 생산라인이 순차적으로 멈췄다.
산업계에서는 노조 측의 ‘파업 도미노’가 본격화하면 각 기업들마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호실적을 거두면서 우리나라 수출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경우 파업 후폭풍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모트라스 노조의 전날 파업으로 인해 약 6000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해 현대차와 기아 등 완성차는 하루에만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특히 완성차에 납품하는 수많은 협력업체의 생산 손실까지 고려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양대 노총이 주장하는 노란봉투법 역시 산업계에서 부담 요인이다. 경영계에서는 최근 야당이 발의한 노란봉투법 개정안과 관련 ▷근로자 개념 확대 ▷사용자 개념 확대 ▷노동쟁의 범위 확대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문제점으로 지목하면서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노사관계 법률 체계를 뒤흔들 악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해 경제 6단체 역시 이달 초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근로자, 사용자, 노동조합의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노사 관계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노조공화국, 파업공화국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노조 회계자료를 공시하도록 하는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대한 노동계 반발도 ‘노조 리스크 확산’에 불을 지피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조업 분야 최대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타임오프제와 노조 회계공시 철폐, 노란봉투법 개정 등을 고루 담은 ‘금속노조 노동법 개정요구서’를 최근 정치권에 전달했다. 내달로 예정된 전면 총파업에서도 이 같은 핵심 요구를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금속노조 총파업과 연계해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모트라스 등 굵직한 완성차 및 부품사 노조들이 파업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속노조에는 대표적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자동차와 조선 노조가 포함돼 있다.
산업계와 노동계가 첨예한 견해차를 보이면서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총파업과 산하 노조 임단협 교섭 등이 맞물려 하투가 격화될 경우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중심으로 국내 제조업 전반의 생산 차질과 경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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